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헌 Dec 31. 2021

20년은 22년의 나에게로까지

2020년 11월 7일

정말 네 생각만큼 차지하고 있을까? 미안하지만. 아니, 아닐걸.


사사로운 사건들.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 '너는 꼭 앞으로도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어.'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이 해준 말. 아차산 산책로에서 진달래를 그리던 나에게 했던 말. 어떤 강한 도구도 뽑을 수 없다.


사브락 거리는 재질의 바지를 입고 황토로 포장된 길에 앉아 있던 나의 모습은 10년 이상을 어떤 끈과 이어지게 했다. 지구본 색연필이 프리즈마 컬러로 변했을 뿐. 단지 산책로라고 여겼던 흙의 가능성을 쥐고 정형할 뿐.


처음으로 그 강렬한 느낌을 느낀 것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단박에 열여덟의 나를 떠올릴 것이다. 남들이 하길래 따라서 같은 반 학생을 좋아했던 일 말고 폐를 쥐어짜는 일. 심장인지 뭔지. 누가 정확히 알겠는가.


어린이 대공원 놀이터를 보면 네가 생각나. 이제는 정말 간혹의 일이 되었지만 18살의 너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해. 아,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이제 하늘에 떠가는 구름의 모양을 보고 어렴풋이 어떤 것을 떠올리는 일만 같지만, 구름은 나의 삶에 호수를 만들고 비를 내리게 한다.


고통을 받은 적이 언제냐고 넌지시 물어보면 대충 떠올리려는 시늉만 해본다. 그러나 몇 번 뒤척여 보았을 뿐인데 불쑥 너무 선명하게 느껴지는 일. 그 애정이 정말인지의 여부는 정확히 말해줄 수 없지만 그로 인해 받은 통증은 놀랍게도 실존했다! 척추가 타버릴 것 같은 느낌.


그 후로는 우리는 계속 추락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뛰어내린 곳은 어디일까, 넌 학교 옥상의 높이쯤? 다른 너는 그저 몇 계단 오르고 폴짝 내려온 것 같네. 지금 우리는 꽤 오래 날아왔는걸. 타버린 척추가 부러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누군가는 앞선 두 일을 쉽사리 처리해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설령 가짜로 밝혀지더라도 줄곧 부러움을 파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열성 고객이다. 빚을 내서라도 샀던 그 족보들.


어찌 물을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레 컵에 따라서 사랑을 건네줄 수 있는지. 마시는 손동작이 어쩜 그리 우아할 수 있는지. 목 넘김조차 고요하게, 심지어 네 안으로 빨려 들어간 사랑을 어떻게 다시 되돌려 주는지. 그 비밀과 가까워지지 않았다. 다행히 멀어지지도 않았다.


써놓았던 주제를 연달아 지우니 오히려 매끄러운 새벽. 달고 숱하고 가벼운 것들이 어찌 위로 가겠나.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없다고 해서 없는가? 닿지 않아도 있고. 있지만 닿지 않는다. 움직임은 그런 것이다. 내일 네 손톱이 무심코 자라 있을 것처럼.


피에타의 아름다움에 취향이 어디 있나. 그것의 취향을 논할 만큼 위에 있나?


나는 대리석. 나는 조각가, 나는 망치, 나는 날카로운 끌.

작가의 이전글 다소 쌩뚱맞은 시기에 올리게 된 생일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