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헌 Jan 04. 2022

비로소 내가 소강을 이루었을 때 누군가는 소망을 잃었다

2020년 11월 10일

내가 쉽게 사랑하는 이유, 너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이유. 헌신하는 성품 때문에 네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길 바라면서 쓰는 글, 사랑하지 않고도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관계에 보내는 찬사.

새하얗게 또는 새까맣게 잊는 일들. 내가 저번 주에 듣기를 깜빡했던 온라인 강의처럼. 지나고 나서 화들짝 놀라며 생각난 일처럼 사랑이 떠올랐다. 아, 나는 접시 가득 혼란스러운 무언가를 퍼 담았다. 비빔밥을 싫어하는 나. 완전히 얽히고 섞여버린 관계들은 내가 그 음식을 싫어하는 이유와 닮았다.

아득해진다. 감정의 솔직함을 증명해야 할 때. 의연하고 초연한 내가 당혹감을 드러낼 때. 글을 자주 쓰고 싶어지는 일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예전처럼 새벽은 불 타 잿더미 위에 올려질 것이고 감정에서 눈 돌릴 수밖에 없다.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지낼 수 없다. 그 불인지가 쉬운 사랑과 쉬워 보이는 사랑을 지어놓는다. 모델하우스와 같은 나의 감정. 쇼윈도라고 하는 동생에게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쇼윈도는 아닌 것이다.


다만 스스로 떠올린 모델하우스라는 단어에는 승복했다. 난방도 수도도 사용할 수 없는 그런 번지르르한 집.

넌 못나졌다. 나는 가질 수 없는 걸 좋아해. 수중에 들어오고 나면 전부 못나졌다. 본질, 가치. 아무렴 어떤가. 난 새 것이 필요한 인간. 새 사람, 새 감정. 못 견디겠어.

숨어버리고 싶다. 그림 그리고 물레 차는 나만 떼어내 구석진 작업장에 박아두고서 이외의 나를 야산에 파묻어버리고 싶다. 알고 보면 나도 너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헌신할까 하다가도 나는 그 마음이 든 나의 모습을 반드시 찾아내 머리를 내려친다. 안으로 굽은 팔은 의연함을 수호하는 경찰.

꺾어 불어버리는 것이 좋을 홀씨를 달고 있는 민들레와 나. 단순한 장난으로도 과업을 마치는 들꽃. 가끔 꺾고 싶지 않은 꽃이 핀다. 스스로를 민들레라고 소개해도 불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대의 헌신성을 동경하고 나의 건조함을 동경하는 상호는 공감대가 없다. 와닿지 않는 다 넘기는 사랑의 즐거움. 늘 말해왔듯이 너무 건조해지지, 너무 축축해지지 않게. 너무 뜨겁지도, 너무 식어버리지 않게. 가습기나 보온 냉팩쯤이 내 역할인가?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 태워버리고 쏟아버려도 난 상관없던 일 아닌가. 그놈의 연민.

싸우지 않는다. 다툼이 생기면 잡고 있는 것을 놓는다. 그러니 미리미리 많이 잡아두는 게 좋다. 놓게 될 거니까 너와 나는. 그래도 여러 개를 잡아두면 전부 떨어져 버리는 일이 늦어질 거 아냐. 나는 아직도 트로피를 원하고 피겨를 원할 뿐. 과분한 것을 받은 나에게 오버한다고 말할 사람이 이제는 없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는 거 알았으니까 너희 전부 다.

내일도 정신없이 지나갈 테다. 내가 잠들기 전에, 종일 바쁜 와중 잠깐 짬 내서 쉬는 시간에 떠올리는 게 무엇일까. 그래, 그때 나한테 떠오른 것보다 못한 것이다. 사랑은.

그 위치에 앉아서도 그럴까 싶어, 더 같잖아 보일 거 같아. 무슨 의미가 있기에 하며 코웃음 치는 일상이 지루하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20년은 22년의 나에게로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