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0일
내가 쉽게 사랑하는 이유, 너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이유. 헌신하는 성품 때문에 네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길 바라면서 쓰는 글, 사랑하지 않고도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관계에 보내는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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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얗게 또는 새까맣게 잊는 일들. 내가 저번 주에 듣기를 깜빡했던 온라인 강의처럼. 지나고 나서 화들짝 놀라며 생각난 일처럼 사랑이 떠올랐다. 아, 나는 접시 가득 혼란스러운 무언가를 퍼 담았다. 비빔밥을 싫어하는 나. 완전히 얽히고 섞여버린 관계들은 내가 그 음식을 싫어하는 이유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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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해진다. 감정의 솔직함을 증명해야 할 때. 의연하고 초연한 내가 당혹감을 드러낼 때. 글을 자주 쓰고 싶어지는 일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예전처럼 새벽은 불 타 잿더미 위에 올려질 것이고 감정에서 눈 돌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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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지낼 수 없다. 그 불인지가 쉬운 사랑과 쉬워 보이는 사랑을 지어놓는다. 모델하우스와 같은 나의 감정. 쇼윈도라고 하는 동생에게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쇼윈도는 아닌 것이다.
다만 스스로 떠올린 모델하우스라는 단어에는 승복했다. 난방도 수도도 사용할 수 없는 그런 번지르르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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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못나졌다. 나는 가질 수 없는 걸 좋아해. 수중에 들어오고 나면 전부 못나졌다. 본질, 가치. 아무렴 어떤가. 난 새 것이 필요한 인간. 새 사람, 새 감정. 못 견디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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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버리고 싶다. 그림 그리고 물레 차는 나만 떼어내 구석진 작업장에 박아두고서 이외의 나를 야산에 파묻어버리고 싶다. 알고 보면 나도 너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헌신할까 하다가도 나는 그 마음이 든 나의 모습을 반드시 찾아내 머리를 내려친다. 안으로 굽은 팔은 의연함을 수호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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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어 불어버리는 것이 좋을 홀씨를 달고 있는 민들레와 나. 단순한 장난으로도 과업을 마치는 들꽃. 가끔 꺾고 싶지 않은 꽃이 핀다. 스스로를 민들레라고 소개해도 불고 싶은 마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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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헌신성을 동경하고 나의 건조함을 동경하는 상호는 공감대가 없다. 와닿지 않는 다 넘기는 사랑의 즐거움. 늘 말해왔듯이 너무 건조해지지, 너무 축축해지지 않게. 너무 뜨겁지도, 너무 식어버리지 않게. 가습기나 보온 냉팩쯤이 내 역할인가?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 태워버리고 쏟아버려도 난 상관없던 일 아닌가. 그놈의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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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는다. 다툼이 생기면 잡고 있는 것을 놓는다. 그러니 미리미리 많이 잡아두는 게 좋다. 놓게 될 거니까 너와 나는. 그래도 여러 개를 잡아두면 전부 떨어져 버리는 일이 늦어질 거 아냐. 나는 아직도 트로피를 원하고 피겨를 원할 뿐. 과분한 것을 받은 나에게 오버한다고 말할 사람이 이제는 없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는 거 알았으니까 너희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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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정신없이 지나갈 테다. 내가 잠들기 전에, 종일 바쁜 와중 잠깐 짬 내서 쉬는 시간에 떠올리는 게 무엇일까. 그래, 그때 나한테 떠오른 것보다 못한 것이다.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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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치에 앉아서도 그럴까 싶어, 더 같잖아 보일 거 같아. 무슨 의미가 있기에 하며 코웃음 치는 일상이 지루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