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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an 05. 2022

나는 여전히 실패할까 봐 무섭다.

2020년 11월 12일


사실 자립이라는 말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자율보다 더.


나는 무서웠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귀신도 어둠도 천둥도 아니다. 바로 실패하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실패와 감상에 다른 요소들을 끌어다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 번의 실패 후 다시 일어서서 달려 나가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정도가 아니라 다리가 통째로 잘려나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될 정도로.


곧게 폈던 다리를 접어 무릎을 꿇고 나의 사람들을 우러러본다. 너희는 어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하고. 누구든지 이해하고 더 성숙한 이들은 사랑하기까지 한다. 혹 그 마음들이 독이 되어 본인을 괴롭게 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밝음에 금세 달아나리. 베일에 가린 그림자까지 볼 수 없지만 그 이면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수평선 너머에 뭐가 있던 내가 알 게 뭔가.


단단하게 길을 막은 바위는 도저히 내 힘으로는 옮길 수도 깨뜨릴 수도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크기와 모양새이다. 나도 나이가 들고 체면이라는 것을 알았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민망하고 쑥스럽다. 하긴 염치없이 손 좀 빌려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에게 전부 싣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버려야 했다. 삶에 충실해도 버려야 했다. 내가 버리고 온 것들을 생각했다. 낭만 같은 것들은 버리면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먹고 버린 물통처럼 내용물은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인색하지만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어린애처럼 사고하는 무정한 인간일 뿐이다. 초조해하고 조급해한다. 어떻게 견디는 걸까. 너희는 안정을 찾고 누군가에게 기댄다. 나는 기댈 수가 없어. 왜냐하면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기대하지도 않고 기대지도 않는다. 위안 삼을 수 있는 공감 능력 정도는 남겨두어서 천만다행이다.


내가 물리적인 시간과 개인적인 능력의 불신으로 인해서 무리하게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는 것인가? 다 누가 불 질러서 없던 일로 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나한테 집중하고 싶어.


텅텅 빈 내 속. 속 빈 강정은 재밌는 간식 말고는 역할이 없다. 비관적인 성격은 아무리 페인트를 발라봐도 낡은 빌라 옥상처럼 초록칠이 벗겨져 빗물이 죄다 샌다. 줄줄줄줄. 맨날 바닥이 축축하게 젖은 이부자리에서 잠들어야 된다.


연달에서 우울해지는 이 마음이 흔들리는 갈대처럼 불어오고 불어오는 바람을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언덕 위 덩그러니 선 나무처럼 거대하지만 유연하지 못한 연고로 뽑혀 날아가버리는 일이 순서일까?


어딘가에 덩그러니 버려진 적이 있나? 정말 나무뿌리를 캐고 냇물을 마시면서 연명 할 준비가 되어있나? 짜임새가 자의와 타의에 의해서 정해졌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앞을 보고 내달리는 내가 정확한 방향을 보고 있는 건가?


발목은 진작에 잘렸다. 발이 없지만 발목으로 땅을 쿡쿡 찍으며 열심히. 열심히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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