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9일
사랑 사랑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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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를 글 쓰게 하는 것도. 살아가게 하는 것도. 죽고 싶게 하는 것도. 울적하게, 기쁘게. 나아가게 하는 것도. 사랑. 전화기를 반으로 박살 내버려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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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순간에 있다. 그래서 목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지옥문이 열릴 때 풍덩, 하고 짙게 담가졌다 떠오르면 내 몸에서 풍기는 지옥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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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서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전화기를 보고 있는 학생에게 버스 기사는 크락션을 울렸다. 빵빵, 학생은 힐끗 올려다볼 뿐 탈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타지 않을 학생의 분위기를 본 기사는 정류장에 정차하려던 핸들을 돌려 다시 차선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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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할 일을 하면 만족스럽다. 승차거부, 무정차 따위의 오명을 피하려 손수 학생의 고개를 들게 한 기사도. 자신이 기다리던 버스가 아님을 제스처로 전달한 학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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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사람은 쌀쌀해지는 이 날씨에 원피스 한 벌만 달랑 입고 있다. 아침부터 데이트가 있나? 나는 추워서 이미 몇 주 전부터 두터운 외투를 입는데. 코트, 플리스, 패딩. 환절기는 복장을 가늠할 수 없어서 어려워. 가뜩이나 콧물이 줄줄 나는데. 마스크를 내리고 닦기도 눈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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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한쪽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모습. 계주에 참가하겠다면 말릴 사람은 없으나 순위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컨디션. 남이사 다리가 없던 신발이 없던. 한데 다리는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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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떨쳐내는 힘. 완력인가? 정신력인가? 그냥 개개인 재질의 차이. 스트레스는 애들 장난감 슬라임처럼 와서 들러붙지만 매일 열심히 폴리싱 한 너는 매끈하다. 금세 떨어지고 마는 너의 것. 하필 내가 오늘 입은 옷은 양털 플리스. 와, 이 옷 빨아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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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한쪽은 떨어뜨릴 수 있는 소재의 사람이 되어야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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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 쥐어 짜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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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에 절어 누워있다가 보니 우울한 생각이 마구 나타났다. 그래서 일어나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면도를 했다. 눈썹은 한번 다듬기 시작하면 계속 신경이 쓰인다. 삐져나와 자라 있는 그 잔털을 매일 확인하고 뽑게 된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면 달가운 마음으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냥 자라 있게 놔둘걸 싶다가도 곧은 직선이 된 눈썹 산을 보고 만족스럽게 족집게를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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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감이 나를 살게 한다. 죽어야겠다 가 아닌 죽겠다가 된 일상에는 재미가 썩 없다. 진지하게 앉아서 내 상태를 진단해보기 무서워진다. 어떤 느낌이랄까, 부모님과 함께 가는 이마트, 하루 종일 굶은 상태로 들어간 편의점. 뭘 샀는지, 왜 사는지 모르는 물건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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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만끽하는 자유보다 내 삶의 곤조가 훨씬 중요한 인간. 후회 없냐고 물어보면 나는 그냥 음악의 볼륨을 최대로 올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