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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an 08. 2022

사랑하면 좋다는 거, 그거 다 뻥입니다

2020년 11월 19일

사랑 사랑 사랑

결국 나를 글 쓰게 하는 것도. 살아가게 하는 것도. 죽고 싶게 하는 것도. 울적하게, 기쁘게. 나아가게 하는 것도. 사랑. 전화기를 반으로 박살 내버려야 된다.

지옥은 순간에 있다. 그래서 목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지옥문이 열릴 때 풍덩, 하고 짙게 담가졌다 떠오르면 내 몸에서 풍기는 지옥의 냄새.

정류장에서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전화기를 보고 있는 학생에게 버스 기사는 크락션을 울렸다. 빵빵, 학생은 힐끗 올려다볼 뿐 탈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타지 않을 학생의 분위기를 본 기사는 정류장에 정차하려던 핸들을 돌려 다시 차선으로 복귀했다.

각자의 할 일을 하면 만족스럽다. 승차거부, 무정차 따위의 오명을 피하려 손수 학생의 고개를 들게 한 기사도. 자신이 기다리던 버스가 아님을 제스처로 전달한 학생도.

저기 저 사람은 쌀쌀해지는 이 날씨에 원피스 한 벌만 달랑 입고 있다. 아침부터 데이트가 있나? 나는 추워서 이미 몇 주 전부터 두터운 외투를 입는데. 코트, 플리스, 패딩. 환절기는 복장을 가늠할 수 없어서 어려워. 가뜩이나 콧물이 줄줄 나는데. 마스크를 내리고 닦기도 눈치 보인다.

묘하게 한쪽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모습. 계주에 참가하겠다면 말릴 사람은 없으나 순위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컨디션. 남이사 다리가 없던 신발이 없던. 한데 다리는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괴리.

스트레스를 떨쳐내는 힘. 완력인가? 정신력인가? 그냥 개개인 재질의 차이. 스트레스는 애들 장난감 슬라임처럼 와서 들러붙지만 매일 열심히 폴리싱 한 너는 매끈하다. 금세 떨어지고 마는 너의 것. 하필 내가 오늘 입은 옷은 양털 플리스. 와, 이 옷 빨아야겠네.

누구 한쪽은 떨어뜨릴 수 있는 소재의 사람이 되어야 공평하다.

감사함 쥐어 짜내기.

피곤에 절어 누워있다가 보니 우울한 생각이 마구 나타났다. 그래서 일어나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면도를 했다. 눈썹은 한번 다듬기 시작하면 계속 신경이 쓰인다. 삐져나와 자라 있는 그 잔털을 매일 확인하고 뽑게 된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면 달가운 마음으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냥 자라 있게 놔둘걸 싶다가도 곧은 직선이 된 눈썹 산을 보고 만족스럽게 족집게를 내려놓는다.

성취감이 나를 살게 한다. 죽어야겠다 가 아닌 죽겠다가 된 일상에는 재미가 썩 없다. 진지하게 앉아서 내 상태를 진단해보기 무서워진다. 어떤 느낌이랄까, 부모님과 함께 가는 이마트, 하루 종일 굶은 상태로 들어간 편의점. 뭘 샀는지, 왜 사는지 모르는 물건을 고른다.

사랑을 만끽하는 자유보다 내 삶의 곤조가 훨씬 중요한 인간. 후회 없냐고 물어보면 나는 그냥 음악의 볼륨을 최대로 올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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