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1일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날 것을 샀다. 일주일 내내 익히고 간단하게 조리된 음식만 먹어온 내 모습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너는 산 것을 먹어라. 그래서 얼마나 삶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지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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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은 도사리고 있다. 주머니 속의 영수증이 바스락대길래 꾸깃하게 구겨버리려 꽉 잡았을 때, 함께 찍어준 스테이플러 심이 내 손가락을 파고든 것처럼. 꼭 피가 흐르고 낭자한 채로 널브러져야 상처인가? 금세 사라질 절륜한 통증이 손가락에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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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하트. 이 시대의 비극이로다. 유리를 두 번 두드리면 책의 표지가 넘어간다. 얼마나 자주 비극적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됐었냐고 묻는다면, 내 전화기에 뭍은 내 지문을 보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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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너무 잦다. 우리가 괴로워하는 이유가 그곳에서 기다린다. 난 변했다. 번지점프를 수 없이 하는 나를 죽이고 삶에 언제나 쉽게 미끄러져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을 달았다. 안전띠도 필요하지 않고 준비도 필요 없다. 미끄러진 나는 그나마, 그나마 안전한 호스를 타고 땅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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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게 설계된 삶이 보편적으로 변했을까, 다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음모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독점하기 위한 일이다. 다행인 건 그 독점의 녹을 나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치 앞도 모른다고들 하는데, 네가 꿀꺽 삼키는 마른침에서 물을 따라 가져다주는 내 손이 보임은 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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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이 된 일들을 깎아내고 풀어내어 정리했다. 아직 쓰레기 수거차량이 올 때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전보다는 보기가 좋다. 유리는 유리끼리. 종이는 종이끼리. 나는 어디에 속해있을까. 나는 무엇과 함께 내동댕이 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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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군가의 편협함의 수혜자이자 희생자. 과거에서 배움을 얻는 인간의 습성에 의해서 밀려난 우선순위 였, 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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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나의 감상이 마냥 낭만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이 그냥 극복하지 못한 장애물에 대한 묘사처럼 보일까 봐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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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은 사람을 쉽게 아프게 한다. 바다가 더러워지고 위생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낭비라고 필터링되어 들리는 단어인 것이다. 굴을 먹을 때 배가 아플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먹게 된다. 가족들과 간 바다에서 먹은 굴은 며칠 동안 나를 소파에 누워 꼼짝하지 못하는 환자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나의 기호에 선택받은 이유는 뭔가, 맛이 있나 하면 별미 정도. 도사리는 위협에 대한 동경. 죽은 것만 먹게 된 일상에 대한 반항심.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 조차 튀김 속 굴에 대해 사색했다는 사실에 대한 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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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끊기지 않기를 바라면 필연적으로 끊기더라. 이어져 있어도 툭, 툭, 간헐적인 연결만을 제공하는 이기적인 연결이라도 좋다.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