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룬 나의 미술, 음악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
2019년 12월부터 7명을 대상으로 기타 레슨을 시작했다. 나는 처음 레슨을 시작할 때 우리의 교육목표는 현란한 기타 솜씨를 뽐내는 기타리스트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인생을 풍요롭게 즐기며 음악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는 것이라는 취지를 설명한다.
수강생의 대다수는 50대 이상의 주부였으며 기타를 처음 접해본 사람, 대학교 때 경험해 본 사람, 현재 다른 곳에서 배우고 있던 사람 등 수준도 가지가지였다. 그렇게 퇴직 후 기타 레슨 강사로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복병이 나타나 나의 운명은 본의 아니게 뒤집히게 된다.
기타 레슨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내가 알고 있는 기타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두 배로 연습을 해야 했기에 나의 기타 이론, 연주 실력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다.
당초 화, 목요일은 기타 레슨에 주력하고 나머지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자 계획하였는데 서서히 레슨에 무게중심을 더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레슨을 확대하고자 하는 욕심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홍보로 기타 레슨을 확대하고자 구체적인 계획까지 생각했다. 그만큼 기타를 가르치며 수강생들과 함께 노래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레슨을 시작한 지 채 두 달도 못되어 코로나19라는 복병이 몰아쳤고 처음 전대미문의 팬데믹 상황을 맞은 국민들은 당시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백신 4차까지 맞은 상황에 처음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처음에는 그야말로 공포와 두려움 그 자체였었다.
모든 레슨이 즉각 중단되었고 나는 외출도 자제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회사들도 재택근무에 돌입했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퇴직 후 수개월에 걸친 준비 끝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내게는 참으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레슨을 더 확대하기 전에 팬데믹 상황이 도래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한동안 재택근무를 시작한 아이들과 오순도순 밥 해 먹는 일 밖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이렇게 무모하게 귀중한 시간을 죽치고 보낼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코로나 상황이긴 하지만 미사랑에서 혼자 그림 그리는 일까지 중단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달 만에 다시 미사랑에 나가 그림을 다시 시작한 후 거의 1년 이상을 주말도 없이 오직 그림 그리기에만 매진했다. 그 해 6월 지인을 통해 화가 선생님 한 분을 소개받아 처음으로 일 주에 한 번 정식 수채화 공부를 하며 그림에 몰입했다.
만에 하나 팬데믹 상황이 없었다면 내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처음 일곱 명이었던 수강생을 확대하고자 홍보를 강화했었다면 나는 레슨에 묶여 그림에 지금만큼 몰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음악과 미술…. 그 무엇이 우선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나를 매료시킨 것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음악에 기운 마음을 운명이 가로막고 나를 미술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나는 미술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이제 음악은 나의 일상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이제 그림이야 말로 내게 없어서는 안 될 나의 최고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음악에 대한 나의 꿈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코로나 상황이 완화되자 몇 분이 기타 레슨을 다시 시작하셨고 앞으로도 삶의 풍요와 치유를 위한 소규모 기타 레슨을 지속하고자 한다. 아니, 음악뿐 아니라 미술 역시 마찬가지. 나의 재능이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를 줄 수 있다면 기꺼이 재능을 나누어 주고 싶다는 것이 계속 진행 중인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