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와 보리는 입양 6개월 만에 입양 순서대로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태어나 2세도 한 번 가져보지 못하고 중성화 수술을 받게 된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20년 8월, 제리가 먼저 수술을 끝내고 회복되자마자 보리가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보리는 수술 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술 후유증 탓이려니 했지만 며칠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고 우울하게 잠만 자는 녀석이 안쓰러워 다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니 뜻밖에도 복막염이 심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원장 선생님은 안락사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다.
"안락사를 시키라고요?!"
안락사라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눈앞이 캄캄했다. 어린 시절 강아지 제니가 독약을 먹고 세상을 등졌을 때 느꼈던 그 슬픔과 절망감으로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다짐했었는데 또다시 그러한 아픔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내 입에서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안락사를 고려할 만큼 중증의 복막염이라면 중성화 수술을 위한 사전 검진 시 어느 정도 증상이 있었을 텐데 왜 무턱대고 수술을 강행했는지 병원 측의 무성의에도 화가 났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음식을 먹지 못해 하루하루 야위어 가는 몸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보리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앞섰고 말도 못 하는 녀석이 얼마나 아프면 저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5개월 된 아기 고양이를 어떻게 안락사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입양한 동물인데 보호자로서 무엇인가 치료법이 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보리를 입양한 딸도 충격을 받아 일단 보리를 살리고 보자라는 데 한 마음이 되어 고양이 동호인 카페 등을 통해 복막염 치료에 대한 온갖 정보를 수집한 끝에 미국에서 생산된 약물이 효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만 3개월 이상을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엄청나게 고가라는 것이다.
퇴직 후 연금 외에 뾰족한 수입원도 없었고 남편은 사업실패 후 소일하며 자신 앞가림하는데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막내가 아직까지 학교에 다니고 있어 수시로 목돈이 들어가곤 했다. 그 와중에 고양이 치료비로 500여만 원을 지출하는 것이, 그것도 100% 회복된다는 보장도 없는 치료를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고민되었지만 나는 결단하였다. 돈은 있다 가도 없는 것. 저 작은 생명체, 태어난 지 5개월도 채 안 된 녀석을 그냥 하늘나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보리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인 이상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보리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동안 면회를 가면 삐쩍 마른 몸으로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 있다가도 그래도 가족이라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우리를 반겼다. 그런 보리를 보면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결국 나는 그로부터 3개월을 주말도 없이 매일 아침 고양이 보리를 데리고 출근하듯 병원으로 데려가 복막염 치료 주사를 맞혔다. 병원 측은 복막염 증세가 있음에도 이를 가볍게 여기고 중성화 수술을 강행한데 대해 책임감을 느껴서인지 보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고 휴일에도 출근하며 주사를 놓아주었다.
복막염 주사는 한 번에 상당량의 약물을 주입해야 하기에 매우 아프다고 한다. 3개월을 매일 같이 주사부위가 헐 정도로 등에 굵은 주삿바늘을 꽂아야 했던 보리의 고통이 어떠했을까! 때문에 보리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마다 피나는 한 판 전쟁을 치러야 했다.
눈치 빠른 녀석은 내가 외출하려는 낌새만 보이면 벌써 침대 밑으로 숨어 들어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간식을 주는 등 갖은 유혹과 때론 협박으로 겨우 이끌어내면 간식만 잽싸게 입에 문 채 날랜 속도로 이리 튀고 저리 튀며 도망쳐 버리곤 했다. 나의 팔과 다리에는 아침마다 녀석을 잡는 과정에서 생긴 전쟁의 상흔들이 지워질 날이 없었다.
매일 그 같은 전쟁을 치르면서 시간이 지날 때마다 보리는 조금씩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아팠을 때 거의 식음을 전폐하며 좋아하는 간식조차도 모두 거부했던 보리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사료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제는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보리가 활력을 되찾아 가는 것이 느껴졌다. 매일 아침 전쟁의 강도가 조금씩 높아져 병원에 가는 과정이 날로 힘겨워졌지만 보리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청신호였기에 개의치 않았다.
마침내 그 해 연말이 되자 보리는 예전 건강한 모습으로 완전히 회복되었고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길고 늘씬해진 몸매를 과시하며 가끔씩 집안을 침공하는 바퀴벌레를 비롯한 온갖 벌레를 순식간에 처치해 주는 나의 호위무사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