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오후, 따스한 봄 볕을 받으며 베란다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 제리와 보리. 그런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운 동시에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달리 산책이 어렵다. 예전 같으면 고양이들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다니다 집으로 귀가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현재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자칫 길을 잃어 길거리 고양이로 전락될 위험이 크기도 하려니와 스트레스에 취약한 고양이에게 목 줄이나 도시의 소음, 차량 등은 정신건강에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사랑스럽지만 애처로운 모습을 사진에 담아 공모전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양이의 모습을 하도 많이 드로잉 했기 때문에 나는 녀석들의 얼굴 표정을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때문에 그 어떤 그림보다도 편안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었다. 따스한 봄 볕을 받으며 앉아 있는 녀석들을 보니 문득 내가 좋아했던 세시봉 가수와 동명이인인 시인 이장희 님의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제목의 시가 떠올랐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 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 그런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나의 그림 제목으로 제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명 “봄은 고양이로다”.
놀랍게도 공모전을 불과 보름 정도 남겨 놓고 그린 이 그림으로 나는 공모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나는 사실 공모전을 준비하며 특선이나 입선만 되어도 감지덕지라 생각했기 때문에 공모전을 통해 미술작가로 등단하기 위해서는 약 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3년이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보통 입선, 특선, 장려상 등 수상 등급에 따라 점수를 가산, 일정 기준의 점수에 도달해야만 미술단체 회원자격을 얻게 되어 미술작가로서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십여 년을 공직에 있다 퇴직한 지 불과 이 년 밖에 되지 않은 내가 어찌 감히 단번에 작가로 등단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결과는 특별상, 단번에 한국여성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게 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수상 결과를 확인했을 때 상단에 내 이름과 작품명을 발견하고 큰 기쁨과 감격으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나의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의 모델이 되어 주었던 아기 고양이 제리와 보리에게 고맙기 그지없었다.
정말 동물은 영물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실감이 났다. 버림받았던 자신을 가족으로 품어주고, 죽어가던 자신을 다시 살려낸 주인, 사랑으로 온 정성 다해 길러주는 주인이 오랜 세월 가슴에 품고 살아가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두 녀석이 합심하여 제대로 보은을 한 것이 아닌가! 나는 이 그림을 심사하신 분들이 작가의 예술적 재능이나 기교를 떠나 그림 안에 담긴 작가의 마음을 읽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림 안에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사랑과 측은지심이 그대로 담겨 있기에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2021.10.6~10간 인사동 갤러리에서 시상식을 겸한 수상작품 전시회가 열렸고 가족, 친구, 동료 등 많은 분들이 축하를 위해 전시장을 방문해 주셨으나 정작 시상식장에는 코로나로 인해 아무도 참석할 수 없었다. 특별상 대표 자격으로 단상에 나아가 수상을 할 때 내 삶에 있어 그림이 내게 주었던 남다른 의미를 생각하며 감격으로 인해 나는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도전은 계속된다 – 개인전 준비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기쁨도 한순간이다. 공모전 특별상 수상으로 세상이 내 것 같이 느껴지던 기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잦아들고 그림에 대한 나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 나의 혼이 담긴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
초년의 미술작가에게 터무니없는 꿈이지만 마음만은 정말 간절하다. 앞으로 협회에서 주관하는 정기전, 소품전 등 1년에 두 번씩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기에 더욱 마음의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한 거기서만 머물 수도 없는 것이었다. 도전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상작 전시가 끝나자마자 사업을 하는 지인의 의뢰를 받아 그림 두 점을 그려주느라 시간이 후딱 지나갔고 2022년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그림을 처음 시작한 지 6년 차가 되는 시점이었다. 이제는 내가 그동안 그려왔고 또 새로 그려낼 작품들로 개인 전시회를 한 번 개최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생각이 들면 바로 실천이다. 곧바로 개인전을 위한 공간을 알아보았다.
내게는 또 하나의 작은 꿈이 있었다.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나 혼자 품어왔던 꿈. 그것은 나의 개인전 개막식 날 여러 동료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내 주변에 클라리넷, 색소폰 등 악기를 연주하는 분, 클래식 중창을 하는 분, 또 나와 같이 기타와 노래를 즐기는 분 등이 다수 계셨다. 이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통해 나의 개인전을 자축하고 싶었다.
작은 음악회를 개최할 만한 공간을 갖춘 갤러리를 찾아다니다 인사동 중심가에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고 곧바로 계약에 나섰다. 그리고서 지금 나는 개인전 준비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개인전을 통해 나의 그림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얼마나 가혹하고 거침없는 비평이 이어질지 각오해야만 하리라.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인 “깊이에의 강요”라는 초단편 소설이 있다. 촉망받는 신예 여류화가가 칭찬 끝에 무심코 던진 어느 평론가의 “깊이가 부족하다”라는 말에 집착하여 고뇌하다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데 나 역시 저와 같은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므로 죽음을 선택한 주인공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리고선 혼자 다짐하곤 한다. 앞으로 내 그림에 대해 그 어떤 뼈아픈 비평이 쏟아진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더 단단해지리라”라고.
오늘도 나는 미사랑에 나와 개인전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계속해서 그림 소재를 찾고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고민하며 그리고 또 그린다. 뜻대로 되지 않아 폐지가 수북이 쌓여가도 이러한 모든 과정이 내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큰 행복이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릴 때면 기타를 잡는다. 누구도 들어줄 사람 없지만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문득 시야가 확 트인 미사랑 창 밖을 바라보면 어느덧 화사했던 벚꽃이 지고 연한 녹색, 싱그러운 푸르름의 향연이다. 바야흐로 내 인생의 시계는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이 세상은, 그리고 내 마음만은 푸르름 가득한 봄, 봄이로구나! 주위가 온통 노랑, 분홍, 연둣빛으로 뒤섞여 수채화처럼 화사하게 번져 물들어 가는 봄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