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고양이 (30편)

50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룬 나의 미술, 음악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

by 김경미

제9 화 : 진정한 집사로 거듭나기


지난 초 봄, 세 아이중 둘 째인 딸이 결혼식을 올렸다. 요즘처럼 젊은이들이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시대에 그나마 둘 째라도 결혼을 한다고 하니 고맙기 짝이 없었다. 속 시원함과 함께 훤칠한 사위를 얻게 되어 마음이 뿌듯하였었다. 그러나 막상 딸이 집을 떠나게 되자 왠지 모를 서운함과 허전함도 함께 밀려왔다.

딸은 고양이 제리, 보리를 입양한 원조 집사였다. 처음 고양이 입양을 반대했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를 데려온 딸에게 결혼하면 데리고 가는 조건으로 사후 허락을 했었다. 그러나 아기 고양이에게 한눈에 반해 스스로 집사를 자처하며 2년 동안이나 정성껏 돌보는 사이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딸이 결혼을 한다 해도 아이들을 도저히 보낼 수 없을 만큼 두 녀석에게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말로야 "신혼집이 작아서 제리, 보리 두 마리를 어떻게 키우겠니, 아무래도 무리야~" 라며 걱정하는 척했다. 신혼생활에 여러모로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갖게 되면 어쩌려 하느냐는 등의 온갖 핑계를 갖다 대며 고양이를 보내지 않으려 내심 작정을 하였다.


사실 고양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동물이지만 키우다 보면 의외로 손이 많이 가고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털 관리가 문제였는데 털이 상상외로 많이 빠지기 때문에 자주 빗어주고 주변 청소를 열심히 해야 한다. 아니, 아예 그러려니 하고 털과 더불어 생활해야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암만 청소를 열심히 한다 해도 이불이나 옷가지에 털이 묻어나는 것은 기본, 식사를 통해 모르긴 몰라도 하루에 수십 오라기는 뱃속으로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고양이 용변 문제이다. 고양이들은 대소변을 철저하게 가린다. 한 번도 실수하는 법 없이 자신들의 변기 안에 부어준 모래에서 용변을 해결했다. 고양이 변기의 모래는 수시로 갈아주고 항시 청결을 유지시켜 줘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발톱도 자주 깎아 주어야 하고 아주 가끔은 목욕도 시켜주어야 한다. 병치레를 할 경우 병원에 데려가는 일도 수월치 않다.


딸이 결혼을 하기 전 내가 집사를 자처했다지만 말만 집사였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일, 맘마 챙겨주는 일 외에 온갖 잡다하고 귀찮은 일들은 모두가 아이들이 나누어 전담했다. 고양이를 입양할 때 용변 치우기, 목욕시키기, 털 관리 등 모든 것을 자신들이 도맡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지만 육십 초입에 접어든 엄마가 그런 일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착한 아이들이 기꺼이 전담해주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딸이 결혼하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결혼한 딸에게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간 딸이 담당했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막내아들이 있으니 무거운 모래 옮기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 외에 여러 잡다한 일들을 떠맡게 되었다. 아직까지 발톱을 깎아주는 일을 비롯하여 모든 일에 익숙하지 않아 간혹 집에 들르는 딸이 도와주는 경우가 더 많지만 이제는 나도 진정한 집사로 거듭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딸이 결혼하고 집을 떠나니 생각보다 무척이나 허전하고 적적했다. 비대면 수업이 끝나자 막내도 매일 학교에 갔다 늦게 귀가하거나 때로는 과제 수행을 위해 외박하는 경우도 있어 썰렁한 집에 혼자 있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때 내 곁에 제리, 보리가 있는 것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없어서인지 제리, 보리 또한 내게 의지하는 정도가 강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침대에서 함께 자고 일어나 내가 아침을 먹으러 주방에 나가려 하면 저희들이 먼저 주방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곤 한다. 수년 내 막내마저 떠나는 날이 반드시 올 터인데 만일 두 녀석이 없다면 얼마나 적적한 삶이 될까 생각하니 녀석들이 더욱더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삼십 대 즈음 ‘홀로서기’라는 시가 크게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노년의 삶 초입에 있는 바로 지금이 진정으로 내가 아이들로부터 독립해 홀로 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들의 세월은 사람보다 7배나 빠르다고 한다. 내게는 영원한 아기 고양이지만 제리, 보리도 고양이 나이로 어느덧 이십 대를 훌쩍 넘겼고 조만간 나와 함께 본격적인 노년의 세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남은 세월 동안 나와 제리, 보리가 서로 의지하면서 풍요로운 노년을 함께 가꾸며 살아가는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에필로그


어느덧 길고 길었던 시간여행의 여정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약 서너 달 동안 아기 고양이들과 함께 한 시간과 나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깊숙이 남겨져 있던 과거 상처의 잔해들이 모두 녹아 사라진 느낌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자 한 것은 상처 많았던 어린 시절, 음악에 미쳐 밤마다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꿈꾸기 시작했던 많은 것들이 거의 4~50년 지나 하나 둘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으며 그 꿈들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삶의 여정을 글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삼 남매에게 치열하게 살아온 엄마의 삶에 대해 알려 주고 싶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야기했듯이 내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와 노력 때문만이 아니다. 비록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해도 내게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자기 혼자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나를 위해 희생과 봉사를 마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신 나의 부모님, 언니들, 시어머니, 남편 그리고 스스로 알아서 커 준 삼 남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어 내 인생을 바꾸어 준 고양이 제리, 보리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특히 크리스천으로서 어떠한 환경조건이 되었든 그 조건을 마련해 주시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새벽에 몸을 일으켜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나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절망에 빠진 누군가가, 특히 어려운 가정환경에 위축되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의 성장 스토리를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위안, 감동을 받고 꿈과 용기를 되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 나아가 이 글이 은퇴를 앞둔 많은 직장인 후배들에게 부족하나마 작은 지침서가 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 다정한 아기 고양이 제리, 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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