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애는 익숙해도,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걸 A와 헤어지며 깨달았다.
결혼하자는 말도, 내가 더 사랑한다는 말도, 꽉 잡은 손도, 오랜 키스도 저번 연애들과 다를 것 없었다. 같은 카페에 가서 같은 메뉴를 시켰고, 같은 모텔에 가서 같은 담배를 폈다. 함께하는 사람만 달랐다. 무료했나,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그 반복이 조금은 두려웠다. 이제 연애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으니까. 많은 연애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스페인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A가 모르게 휴학을 했다. 스페인은 처음이니까 다른 연애를 하겠지, 하는 소망과 기대에 부풀었던 것 같기도 하다. A에게 무슨 이유로 이별을 고할지 하루정도 생각했다. 핑계라는 거 알면서 꿋꿋이 '이유'라고 합리화했다. "널 안 좋아하는 것 같아." 그 와중에 나쁜 사람은 되기 싫어서 애매하게 말을 끝냈다. A는 "갑자기?"라고 묻고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동작이 너무 급해서 1990년대 후반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았다. 웃기진 않았다.
A는 입을 막고 날 쳐다보았다. 나만 손톱을 물어뜯었다. "아, 이건 네 버릇인데."라고 말하면서도 손톱 뜯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A는 울지 않았고, 나는 이별이라면 응당 눈물 정도는 흘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울기로 했다. 입에서는 투박하게 잘린 손톱의 잔해가 떨어졌다.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거센 숨을 정리하며 울었다. A는 자신의 입을 막은 손을 떼고, 오른손인지 왼손인지 모를 손으로 내 머리를 만졌다. 아, 너는 찬물로 씻는 것을 좋아했지만 손은 따뜻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A가 질색할 만큼 뜨거운 물로 씻어서 이렇게 차가운 사람이 됐다. A는 그렇게 한참 내 머리를 만졌다. 나는 햇빛에 녹는 얼음처럼 손의 열기에 속수무책으로 녹을 수밖에 없었다. 뚝뚝뚝뚝, 물들이 얼굴을 지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잘 가." 그것은 A의 바람이었을까? 나는 잘 가지 못했고, A는 갔다. A는 갔고,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바닥에 널부러져 눈물을 맞은 손톱들을 바라봤다. 스페인으로 간다는 말을 할 걸, 다시는 날 보지 못할 거라고 말할 걸, 하고 후회했다. A를 사랑한다는 건 깨닫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