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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Sep 15. 2024

우리는 아름답지 않았다.

 고래국수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입 먹은 9500원 쌀국수. 순찰 나가 빈 경비실 옆 계단. 따뜻한 등. 머리를 마구 날리게 하는 바람. 처음. 유난히 크고 예쁜 달. 간지러운 코와 감기는 눈. 나얼의 바람기억. 잘 지내자와 잘 살아. 의무가 돼서는 안 되는 오빠동생사이. 안 맞는다는 걸 세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온 길을 다시 걷고, 한 대화를 다시 하고. 울고 웃고. 빨개진 코를 보고 눈물을 닦아주고. 볼에 닿는 손에 뽀뽀하고. 다시는 사랑하지 말자. 야간버스를 타고 혼자 다짐하고. 이제는 슬프지 않고, 이제는 죽지 말란 말을 하지 않고, 이제는 내가 죽고 싶은 사람이고. 까진 비밀은 너무 크고, 미리 알았다면... 그래도 달라지진 않았을 테고. 사랑 안 하겠단 맘 대신 잘 맞는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맘을 품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토할 것 같다. 역시 예상대로 끝났다.


 이 글은 내가 당신과 헤어지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 작성한 것. 기록용이었다. 우리 헤어질 때 당신은 울었지만, 난 큰 감흥이 없었다. 처음에는 당신을 왜 다시 만났을까, 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목적이 분명한 만남이었다. 난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서 당신을 만났다.

 당신과의 지긋지긋한 과거를 곱씹는 것이 더는 날 혼란스럽게 하지 못할 때, 나는 흥미를 잃었다. 시시해졌다. 나를 두렵게 했던 당신이, 그리고 당신과 쌓은 과거가 참 별 거 아니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다. 득 볼 거 없는 관계였다.

 나는 이제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 않다. 당신의 불행을 바라지 않는다. 당신을 저주하지 않는다. 걱정되는 건 내가 당신의 글에서 미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다. 여전히 글을 쓴다면, 나를 주제로 사용하지는 말길. 나는 당신이

잊은 과거가 되고 싶다. 영영 꺼내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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