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 Oct 13. 2024

놀라면 내 이름을 외치던 사람에게

 잘 지내? 이런 뻔한 말로 시작하고 싶진 않았는데. 나는 잘 지내. 다행이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다정한 사람을 만났어. 오빠를 만나기 전부터 이상형이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오빤 다정하지 않았잖아. 재밌는 사람이었지. 똑똑했고, 참 단단했지. 오빤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당신이 그렇게 안 단단하다고 그랬지만, 난 그렇게 믿었으니까.

 웹드라마 제작사에 입사했다는 건 들었어. 술 마셨다는 것도 들었어. 그 얘긴 좀 흥미롭더라. 왜 마셨어? 아직도 마시나, 자주 마시나. 난 오빠가 왜 술을 안 마셨는지 아니까 걱정도 되고, 궁금해지더라. 나 때문에 마셨던 건 아니지? 나랑 헤어지고 힘들었어? 에이,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는데.

 난 실감이 안 났어. 진짜 열심히 사랑했는데 끝이 쉬웠잖아.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우리 둘 다 끝인 걸 알았지. 오빠 집에서 짐을 정리하면서 밖으로 나간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렸던 것 같아. 안 붙잡나, 정말 끝인가. 매일 담배를 피우던 골목에서도 오빠는 안 보이고, 짐을 안고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데 동아리 언니를 만났어. 오빠도 아는 언니.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수 있었어. 헤어졌다고 말하진 않았어. 위로가 필요하진 않았거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들더라. 좋아서 연애했으면서 붙잡혀있던 사람처럼 굴었지? 웃겨. 우리 정말 좋았는데. 오빠가 슬픈 꿈을 꾸면 내가 안아주고, 잠 못 드는 밤에는 마주 누워 어린 왕자 오디오북을 듣고. 벽에는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하고, 목에서는 같은 베개 냄새가 났지. 난 헤어지고 자꾸 오빠 이름을 불러서 힘들었어. 오빤 더 힘들었겠지. 놀라면 ‘엄마’라고 소리치지 않고 내 이름을 부르던 사람이었으니까. 그 넓은 침대에서 혼자 잘 자? 겨울엔 내가 사준 가습기를 쓸 거야? 핸드폰 케이스는 그대론가? 귀찮아서 우리 사진도 안 뗀 건 아닌지 몰라.

 오빠가 날 많이 그리워하면 좋겠다. 전애인들처럼 나도 죽었다 생각하지 말고. 내가 오빠 뇌에 깊게 박혀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로 글도 쓰고, 우리 사랑으로 영화도 만들고... 이거 다 내가 했던 거네. 음, 나보다 더 그리워해줘. 우리 사랑을 우리고 우려 줘.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건 싫은데 오빠는 괜찮을 것 같아. 아프지만 즐거운 사랑이었고, 괜찮은 이별이었어.

 처음 만난 날로 돌아가도 날 사랑할 거야? 이제 와 의미 없는 질문이지만 나는 그럴 것 같네. 술자리에서 마주 보고 앉아서 담배도 안 피우면서 오빠를 따라 나가야지. 비 오는 걸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그럼 나도 좋아해 보겠다고 똑같이 말해야겠다. 그럼 오빠는 원래 그렇게 웃냐고 내게 물어봐줘. 난 자꾸 눈을 피하는 오빠를 보고 또 웃어볼게. 내일도 만날까? 그 말엔 또 고개를 끄덕여야겠다.

 우리 사귀는 동안 오빠 때문에 몇 번 죽고 싶었지만, 재밌었어. 내가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사랑. 잘 지내. 내 생각은 하고 싶은 만큼만 해.

이전 11화 무거운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