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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Oct 12. 2024

무거운 이별

 엄마가 할머니께 새 패딩을 입힌다. 빤딱빤딱한 회색 패딩. 엄마가 서울에서 안동까지 소중히 들고 왔다. 엄마가 몇 번이고 말한다.

 엄마 거야. 엄마 주는 거야. 앞으로 이거 입고 다녀. 오래된 거 입지 말고.

 활동하시기 편하게 밑 지퍼를 올려드린다. 지퍼가 두 개나 있다고 할머니가 웃으신다. 모자에 달린 털이 고급스럽다고 연신 만지신다. 패딩을 입고 함께 마트에 간다. 패딩 예쁘지? 사촌 동생은 포켓몬 카드에 빠져서 답이 없다. 응, 나만 답한다.


 집으로 가는 다리를 건넌다. 할머니와 팔짱을 끼고 걷는다. 할머니가 당신이 입고 계신 패딩은 누구 거냐고 물으신다. 엄마가 말한다.

 엄마 거야. 내가 엄마 입으라고 사준 거야.

 참 곱다, 할머니가 답하신다.

 비싸겠다, 털을 만지며 말하신다.


 집에 돌아와 짐을 싼다. 이제 가야 한다. 사촌 동생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여준다. 엄마는 소파에 놓인 패딩을 한 번, 할머니 얼굴을 한 번 본다. 엄마의 입이 움찔거리다 열린다.

 엄마, 엄마 입으라고 산 거니까 꼭 입고 다녀.

 지퍼가 두 개래요 할머니, 내가 덧붙인다. 할머니는 놀라워하신다. 모자에 달린 털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신다.

 별로 안 비싸대요, 할머니보다 내가 먼저 말한다.


 택시를 타고 손을 흔든다. 갈게요. 또 올게요. 봄에 벚꽃이 눈부시게 핀다는 도로를 달린다. 흘러가는 풍경이 아쉬워 창문에 얼굴을 붙인다.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할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털 달린 패딩은 누구 거냐고 물으신다.

 내가 엄마 준 거야.

 엄마가 말한다.

 엄마가 산 패딩. 엄마가 할머니 주려 산 패딩. 모자에 털이 달린 엄마가 할머니 주려 산 패딩. 지퍼가 두 개고 모자에 털이 달린 엄마가 할머니 주려 산 패딩. 가격은 모르지만, 비싸지 않은 그 패딩. 선물한 순간부터 엄마가 쉼 없이 말한 정보를 당신 대신 읊는다. 속으로 읊는다. 택시 안은 고요하다. 엄마는 화내지 않는다. 슬퍼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을 지킨다. 나는 엄마가 느끼는 감정을 헤아릴 수 없기에 어설프게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택시가 느리게 나아간다. 우리의 마음이 무겁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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