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과 일탈 사이
옴짝달싹할 수 없다고 여겼던 부동의 상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1일 1만 보 걷기를 시작한 건
2021년 10월 13일, 어느 가을날이었다.
당시 정신력으로 체력을 지배하며 은행 빚 갚듯 바쁘게만 살던 때였다.
전진, 후퇴, 멈춤을 전혀 몰랐다.
무식하게 성실하기만 했다.
요령도 없었다.
스스로가 가장 낯설었던 건 불면증을 앓았을 때다.
새벽 1~2시 깨면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누군가는 한강다리로 올라가고 누군가는 옥상으로도 올라가 본다는데
나는 내 작은 방문 하나 열 힘조차 없었다.
나는 작은 방 안에서 조용히 걸었다. 다 잠든 시간 부동의 상태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걸었다. 걸음으로써 몽롱한 정신 상태에 불과한 나는 부동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착각했다.
새벽 출근을 준비하며 거울을 보면 얼굴이 흙빛이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잠을 못 자는 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왕복 100㎞ 출퇴근 운전하다 꾸벅꾸벅 졸다가 3일째 되는 날에는 정신력이 버티지 못해
결국 기절해서 잠을 잤다. 아니 잠이 왔다.
도망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주저 않아 뭉갤 수도 없었던 당시 상황이 나를 걷게 만들었다.
종일 종종거리며 바튼 숨을 몰아쉬며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바빴던 당시
걷기는 오직 시간만이 목적일 뿐인 끝이 없는 걸음의 연속이었다.
내 시선은 오직 내 발끝과 토스에 찍힌 걸음수를 카운트하는 데만 집중했다.
나 자신과의 불균형
타인과의 불균형
가족 간의 불균형
시간과 역할과의 불균형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들과의 불균형
수많은 불균형들이 내 일상을 갉아먹고 있을 때, 균형잡기 위해 틈만 나면 걸었다.
항상 불안정한 상태가 출현하면서 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경고가 무서웠다.
당시 걷기는 운동의 개념이 아니었다.
걸을 때 적적하고 무서웠다. 단조로웠다.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쓸데없는 근심 걱정 때문에 걷는 것이라 걷는 시간만큼 권태도 늘어났다.
어떤 날은 내가 걷는 것인지 권태로움이 나를 이끄는지 착각할 때도 있었다.
둘 이상 함께 하면서 안정적이다 싶을 때 찾아오는 외로움이 더 공포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혼자 걷는 편이다.
36년 지기 친구 혜진이와 막걸리 친구 K를 제외하곤 말이다.
때론 그만 걷고 싶을 때도 있었다. 걷기가 뭐라고.
사는 게 쉽지 않다 느낄 때 더 그랬다. 다 던지고 싶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지금껏 노력해 온 게 있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그만둬. 조그만 더 참고 노력해 보자.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건 더 노력하는 게 아니라, 더 참는 게 아니었다.
그냥 일탈하고 이탈하는 것이었다. 그냥 망가져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진짜로 기본만 지킬 수 있다면 망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마구 마구마구 망가지고 싶었다.
지탄받지 않을 정도로만.
나름 이루고 싶은 것도 많고, 지키고 싶은 것도 많은 인생을 살면서 매 순간 노심초사하면서
아주 잠깐은 남몰래 비밀스럽게 엉망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제자리로 돌아오고 싶었다.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큰소리로 당당하게 말하면서 살고 싶었다.
“YES”는 쉬운데 “NO”는 쉽지 않았던 삶 속에서 나의 불멸의 밤은 길고, 깊어졌다.
나의 걷기는 2021년 가을, 겨울을 지나 2022년의 사계절과 2023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2024년 365일, 2025년 봄을 지나 여름인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는 외로운 걷기가 익숙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걷는다.
걷기는 바쁜 일상에서 놓친 헝클어진 내 모습을 조우하게 해 준다.
높고 낮음 없고, 많고 적음이 없다. 화려하고 누추함이 없이 오로지 내 두 발로 가는 그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자연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냄새가 몸속에 파고든다.
걷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한 감각과 사물의 떨림들이 되살아난다.
쳇바퀴 도는 듯한 바쁜 일상에 가리고 지워진 작고 빛나는 순간들이 보이고
송진냄새의 깊이를 알게 되고 별을 보고 밤의 질감을 알게 된다.
이처럼 걷기는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을 가치 있게 바꿔 놓았다.
혼자 걸으며 꽃과 나무, 새와 벌레, 성당과 보건소, 도서관 건물, 노인과 아픈 청년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나를 만나게 된다.
온종일 걷고 나면 허기와 피로가 밀려왔다.
달콤한 피로가 전신의 뼈마디에 잠으로 퍼졌고 걷기는 내게 숙면의 후의를 베풀었다.
지금의 나는 걷기 자체를 즐긴다. 이제는 습관이 됐다.
걷는 것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행복 중의 하나가 되었다.
사무실 옆 천변 길에서도 걷고, 아파트 단지 내 산책길과 지하주차장에서도 걷고
학교 캠퍼스에서도 걷고 방 안에서도 걷는다. 심지어 회사 화장실에서 양치질할 때도 걷는다.
2025년 1월 총 42만 3078보 걸었다. 거리로 치면 253.85㎞, 시간으로 3807분
2025년 2월 총 35만 7429보 걸었다. 거리로 치면 214.46㎞, 시간으로 3016분
2025년 3월 총 39만 8623보 걸었다. 거리로 치면 239.17㎞, 시간으로 3587분
2025년 4월 총 48만 1135보 걸었다. 거리로 치면 288.68㎞, 시간으로 4330분
2025년 5월 총 44만 6050보 걸었다. 거리로 치면 267.63㎞, 시간으로 4014분.
누군가는 그런다.
“○○○의 도가니가 성한 게 신기해.”
나는 걷기를 함으로써
내 삶의 궤도에서 일탈하지 않고,
지구라는 행성에서 이탈하지 않고
존나 잘 살고 있다.
걷기는 내게 사유다.
걷기는 내게 일탈이다.
걷기는 내게 이탈이다.
창밖은 여름, 걷기 딱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