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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Apr 03. 2023

뭐냐 너

자신도 모르는 옹달샘에 파문을 일으키는 존재



방충망 앞에서 서성이던 그 눈에서 배고픔보다 외로움을 본 것은
인간에게 의탁하여 살아남기 위한
 길고양이의  본능적인 생존 의도였을 수도 있지만
고양이의 눈 안에 있던 내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녀석을 제일 처음 만난 것은 아들이었다. 여느 때처럼 산책을 갔다 들어오나 싶더니 후다닥 부엌에서 참치캔 하나를 들고 다시 뛰어나갔다. 영문도 모른 채 저녁에 먹을 참치김치찌개를 떠돌이 길고양이에게 빼앗긴 순간이었다.  아까운 저녁거리를 통째로 가져간 길거리 녀석의 면상을 보기 위해 아들을 따라나섰다. 길바닥 위에 참치캔을 하나 두고 셋이서 모였다. 완전 아기 고양이도 아니고 제법 몸집도 있는 고양이. 내 눈에는 어릴 적 그 도둑고양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고양이는 입맛만 적실뿐 배고픔보다 경계심이 더 큰 지 쭈뼛대고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캔을 길 구석에 두고 자리를 피해주기로 했는데 떠나가는 우리를 멀건히 쳐다만 본다.  다음날 그 자리에 가보니 깨끗이 씻은 듯한 빈 캔만 있었다. 그렇게 배가 고팠으면서 낯선 사람 앞에서 맘 놓고 먹지도 못하는 그 두려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또한 어떤 삶일까.     



그리고 그날 밤 제 발로 우리 집 대문 안까지 들어온 고양이는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마주 보게 되었다. 우리가 가는 것을 멀찌감치서 눈여겨보았음에 틀림없다. 집을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사는 곳을 혼자서 찾아오다니 동물을 그저 본능만이 있는 하찮은 것이라 생각한 내가 오히려 그 손바닥 위에 있는 듯한 서늘함에 잠시 오싹해졌다.           

언제나 굶주려 있을 떠도는 고양이에게는 먹을 것만큼 급선무가 없을 것이지만 인간만이 살고 있는 우리 집에서는 어린 짐승이 먹을 만한 것이 없어 생각해 낸 것이 우유밖에 없었는데 날름날름 잘도 먹었다. 핥아먹어도 거의 마시는 것과 진배없는 속도라는 것이 신기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밤새 현관 앞에 있었던 것인지 아침에 다시 온 것인지 오도카니 기다리는 듯 웅크리고 있었다.  뭐냐 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처음 발견되었던 주변의 집들을 수소문하여 먹이를 주며 임시로 데리고 있던 아주머니를 찾아냈다. 그 집 뒤편의 작은 비닐하우스에서 머무르고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하시며 자신의 집에 원래 기르던 고양이와 잘 지내지 못하고 싸움에 져서 떠난 것 같다고 했다. 동물을 기르는 것이 처음인 우리에게 먹을 것과 바르는 피부약 같은 것을 챙겨주셨다. 기른다거나 돌본다거나 그럴 생각 아니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는데 엉겁결에 받은 약간의 사료와 약과 이것저것 녀석의 정보 같은 것이 그 고양이와 한데 어우러져 한아름 가득,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복잡한 심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급한 대로 종이 박스에 안 쓰는 베개솜을 넣고 집을 만들어 주었다. 그 안으로 쏙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몸을 돌려 까만 눈으로 우리를 빤히 본다.   모든 것이 이렇게 될 줄을 미리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흐뭇한 미소같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는 순백의 만족감 같은 것이 동시에 그 눈에 들어있었다. 오래전에 잊고 살았던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영롱한 눈빛에 아롱져 비치는 것 같았다.

  


동물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자신도 모르는 잔잔한 옹달샘에
파문을 일으키기 위한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 기다려졌다. 매일의 해가 뜨고 매일의 해가 지는 같은 하루의 아침이 다르게 느껴지게 되었다. 녀석이 내일 아침 또 방충망 앞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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