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 Apr 07. 2023

고양이의 자는 모습

죽음 같은 잠




푹신한 베개도 깔아주고 나름대로 안락해 보이는 집을 꾸려주었건만 그것은 나의 편안함인지 녀석은 잘 수가 없는 모양이다. 들어가서 한두 시간 웅크리고 있나 싶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이틀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이대로 떠난 건가 생각했을 때 어슬렁대며 느릿느릿 돌아왔다. 기다림에 애가 탔던 나와는 무관하게 그냥 한번 지나는 길에 들른 것 같은 태평스럽고 무심한 태도로.


마당 한가운데 파골라 안에 의자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 한 사람의 몫을 한다. 처서를 넘긴 8월 비바람이 쌀쌀하기만 하여 이불을 깔아주고 덮어주니 갸르릉 거리며 눈을 감고 내 팔 안에 얼굴을 들이민다. 그저 자신의 안락함에 최대한 만족하는 것일 뿐인데 고양이의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라고 나는 혼자 감동한다.    


            




이틀 만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진 고양이를 들여다본다. 온몸의 힘을 빼고 축 늘어져서 바닥으로 꺼져 들어갈 것처럼 앞다리도 쭉 뻗고 얼굴을 바닥에 대고 잔다. 며칠간 떠돌며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는 듯이 깊은 잠에 빠진 것 같다. 그러나 눈을 감고도 꼬리만은 깨어 움직이며 주변을 염탐하듯 바닥을 더듬거리거나 살짝 흔드는데 그때의 꼬리는 주변을 탐지하기 위한 맹인의 지팡이 같기도 하고 하등동물의 촉수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은 마치 “나 지금 자는 거 아니거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니 허튼짓하지 마. 다 보고 있어..”라고 말하는 경고 같다. 하지만 저 탐사선 같이 배회하는 꼬리만 아니라면 영락없이 죽은 모습이라는 것을 고양이는 아는지.


               

잠을 자면서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 잠이라도 마음 편히 잘 수 없이 한 번이라도 무방비가 된 적이 없는 불안의 삶을 고양이는 어떻게 견딜까.  사방에 적들이 있고 먹을 것도 정해져 있지 않고 지금의 삶이 보장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한순간도 마음을 놓고 모든 것을 잊을 수도 없는 그런 불안의 시간을 살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서 고양이나 인간이나 존재는 불확실성으로 불안해야 할 운명이지만 그래도 잠 만은 편안히 죽은 듯이 잘 수 있는 인간이 고양이보다 행복해야 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생명이 있는 것은 잘 때 모두
천사의 얼굴이 된다.



 제 아무리 천하의 말썽꾸러기 아이일지라도 그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노라면 백이면 백 낮에 야단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 아니던가. 눈을 통해 모든 욕망이 생을 존재케 하는 것인 양 눈을 감으면 욕망은 사라지고 순백의 영혼만 남은 상태가 된다.  깨어있을 때는 북슬거리는 털을 만져보려는 한 번의 손길도 일절 허용하지 않는 쌀쌀함으로 그 앞에서 손을 내밀 때마다 조마조마 눈치를 보기 일쑤이지만 초저녁잠에 깊이 빠진 회류는 어떠한 어루만짐에도 무방비상태가 된다. 나는 잠이 든 고양이의 작은 앞발을 들어 올려보고 까만 고무 쿠션 같은 발바닥을 쿡쿡 눌러보고 뾰족한 발톱을 내 손으로 깔짝깔짝 긁어본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감히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나의 이 모든 나쁜 장난들을 인형처럼 축 늘어져  눈감아준다.     


 얼마나 피곤하길래 이런 짓궂은 귀찮음보다 이 순간의 잠이 더 소중한 것일까. 매 순간 한시라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긴장상태의 시간이 육체를 잊게 하는 죽음 같은 잠 위로 흘러갔다.  죽은 듯 잠든 고양이를 보면 나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고달픈 삶은 누구에게나 생명의 낙인처럼 그 잠 위에 찍혀있으므로.    



이전 03화  기다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