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 Apr 12. 2023

나는 털팔이

아빠의 마음



경남이 고향인 나의 어릴 적 별명은 털팔이였다. 경상도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 말은 덜렁이라는 뜻이다. 내게 이 별명을 처음 지어준 사람은 아빠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어릴 때는 약골이기도 했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인지 멀쩡히 걷다가 제 발에 꼬인다거나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는 일상사였다. 7080년대 열혈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조신함과는 거리가 먼 천방지축으로 키가 크고 몸의 움직임도 큰 편이었다. 


사람에게 있는 기(氣)라는 것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이에 따라 발바닥에서 시작하여 머리끝으로 이동하는데  걷기 시작할 때 발바닥에서 시작된 기는 나이에 맞게 자리를 점하며 계속 위로 이동하여 머리까지 도달하고 마지막에 머리에 당도한 기가 몸을 벗어나면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그때의 나는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분주했는데 아마도 다리에 기가 모여 있었던 탓이었으리라. 

    

금연의 개념이 없던 그 시절 골초였던 아빠를 위해 안방에는 언제나 재떨이가 있었다. 그런데 방안의 아빠 재떨이는 이상하게도 내 발에 붙어 다녀서 담뱃재 한 가득인 재떨이는 방 한가운데서 내 발에 걷어차여 뒤집히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아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털팔이 같은 기(것이), 조심하지 않고!” 홧김에 아빠가 한 그 말은 그대로 나의 별칭이 되어 우리 집에서만 유통되는 말이 되었다. 평소에 한없이 온화한 성품과 소곤거리는 말투의 여성스러운 아빠였지만 신중하지 못한 실수에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실 만큼 그런 면에서 엄격하셨다.      

     

덜렁대는 나로 인해 아빠의 재떨이는 점점 무거운 것으로 바뀌었지만 내 정신없는 발아래에서는 여전히 팔랑거리며 걸리고 뒤집혀 딱히 소용은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두꺼운 유리로 된 안정감 있는 넓적한 유리 재떨이가 오래오래 아빠의 재떨이로 살아남았다. 나의 날뛰는 발이 뒤집기에는 아무래도 무거운 것도 있지만, 뒤집기라도 하는 날에는 무거워서 씻는 것이 더 일이라는 것을 손이 깨달은 이후로 나의 발도 조심하게 된 것 같았다. 나는 빈틈없고 철두철미한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 털팔이여도 아빠를 화나게 하는 그런 우발적인 실수 빼고는 불편한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아빠의 화는 성냥개비의 성냥불처럼 순간적으로 화르륵 타오르고 금방 꺼지는 일회용이었고, 아빠의 사랑은 담배 연기처럼 끊임없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변함없는 털팔이였다. 주변과 상관없이 본인은 행복한 것이 털팔이의 특징이므로.      


그런데 그 털팔이는 집안에서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1979년 국민학교 4학년 때였던가.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먹고 놀다가 집에 와서 별생각 없이 또 놀다가 저녁을 먹고  해거름에 미리 내일 책가방을 싸는데 (이것은 언제나 유비무환인 아빠의 교육방침으로) 그제야 가방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바로 허겁지겁 낮의 분식집으로 뛰어갔었다. 숙제라도 있었으면 가방을 뒤적였을 텐데 그날은 숙제도 없어 놀기로 작정을 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행여나 가방이 없어졌을까 심장을 졸이며 분식집 문을 열자  군인이 총 없이 전쟁터에 간다며 놀리던 아줌마의 웃음소리에 난생처음 털팔이인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빠의 무서운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처음 보는 아줌마의 웃음이 더 비참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물건을 좀처럼 잃어버리지 않는다. 일어설 때는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여전히 덜렁대고, 꼼꼼하고 야무진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덜렁대는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나는 낙천적인 편이었다. 주변 일상을 긍정의 눈으로만 보는 사람의 세상은 오렌지빛이다. 걱정이나 불안 같은 단어는 내 사전에 없었다. 그때 어쩌면 어린 딸 셋을 키우고 공부시킬 생각에 밤낮으로 일에 매달려있던 아빠의 힘겨움이 나의 불안과 걱정까지 다 싸매고 있었던 것임을 털팔이였던 나는 몰랐다.     

 

천성도 바뀌는 것일까. 타고난 털팔이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져서인지 몸이 무거워져서인지 더 이상 물건들은 내 발꿈치를 따라다니지 않고 손에서 미끄러지는 법도 없어졌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털팔이 유전자는 내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나를 닮아 조심성이 없거나 부주의한 실수를 자주 하는 아들에게 나는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모르고 그때의 아빠처럼 화를 낸다. 그때 불같이 화를 내시던 아빠는 분명히 내 몫의 걱정을 하셨다는 것을 아들에게 화를 내고 돌아서는 순간 알았다. 그러나 야단치는 엄마의 속마음을 아들은 알고 있음을 나는 안다. 아빠도 아셨을까. 부족하고 허술한 나였기에 아빠는 더 많이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셨다는 아빠의 속마음을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