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02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말줄임표>를 종종 재밌게 본다. 책을 홍보하는 플랫폼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싶었던 무수한 출판사들이 실패를 겪었다. 오직 민음사TV만이 구독자수 & 조회수가 남달랐던 채널이다.
이 채널은 “우리 책 좋아요.” “이 책이 이렇게나 의미가 있는데 안 읽으면 손해.”라는 식의 대놓고 “책팔이” 방송을 하지 않는다. 대신 평소에 독자들이 만날 수 없었던, 책 너머의 사람들이 나와서 “책이라는 넓은 자장 안에서 우리 이렇게 친해져봐요”로 다가간다.
또 어디서도 책을 만드는 구체적 장면을 볼 수 없었던 독자들에게 기획회의, 마케팅회의를 공개하기도 했다. 출판사 안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신간 홍보 회의든, 제목 회의든, 기획 회의든 함께 둘러앉아 아무 말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무언가 정해지고 진행되는 게 익숙한데, 그런 회의까지 촬영 소재로 대담하게(?) 공개하며 독자들을 유튜브 앞으로 끌어당겼고 그 작전은 유효했다.
회의가 끝난 후 각기 다른 총평을 내리는 편집자들의 한마디는 마치 미드 <더 오피스> 같은 재미를 주었다. 한 편씩 아껴가며 보는 동안 직접 본 적도 없는 다른 회사 편집자들에게 혼자 내적 친밀감이 폭발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게 되지 않을까(그쪽은 당황하시겠지...).
최근 <말줄임표> 시즌 1 종료를 알리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올라왔다. 별생각 없이 보다가 마음이 쿵 내려앉는 말 한마디가 있었다.
진행자 “<말줄임표>를 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출연 편집자 “자아분열이 힘들고. 그런 거 있잖아요. 이게(유튜브가)... 내 업무인가?”
저 질문에 답한 민음사TV 속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주 업무가 아니라 회사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한 유튜브 채널에 어느새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중 앞에 자신을 내보이는 일에 부담을 느낀 듯했다. 천년 만년 한 회사를 다닐 것도 아닌데 직원이 회사의 얼굴이 되는 건 여러 모로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회사를 위한 일이어도 해야 할 직무가 아닌 가욋일이 붙는 것은, 본업을 처리해야 할 에너지도 시간도 빼앗기는 일이기도 하다.
‘이게 내 업무인가?’
편집자들이 일상 속에서 종종 머릿속에 떠올리는 질문이다(내가 편집자로서 해본 일 중에는 표지 사진 촬영을 위해 헤어메이크업 실장님 섭외부터 그날의 촬영 컨셉 자료 만들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코디하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를 돌아보자면 책을 만드는 일 중 교정교열을 보면서 문장과 싸우고 표지, 띠지 문안을 쓰고 보도자료를 쓰는 건 편집자의 업무 중 대략 40퍼센트 정도에 해당한다.
재택근무하던 날. 재택근무가 오히려 편집자의 기본 업무에 충실하게 만들기도 했다.
계약서를 검토하고, 작성하고,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고, 기안하고, 날인을 받고, 계약서 지출결의서를 올리는 일에 대한 업무 시간도 요즘은 하루에 20%는 할애하고 있는데, 편집자의 업무라고 흔히 말하는 일에는 빠져 있다(사원급이어도 편집자는 본인이 기획한 저자와의 출간 계약서는 관리자의 컨펌 아래 직접 업무 처리를 하게 된다).
예전에는 책을 잘 만드는 업무까지가 편집자의 일, 책이 나온 이후는 마케팅(영업, 홍보)으로 바통을 넘긴다고 생각했다. 책이 나오기까지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에, 이제는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애정으로 책임감 있게 돌봐주기를, 바라면서. 지금도 그렇게 일하고 있는 출판사도 많을 거다.
하지만 책이 아닌 콘텐츠들이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시대가 되면서 덩달아 독자들의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출판 시장도 더욱 빨라지고 치열해진다. 한 권의 책이 시장에서 조명되는 시간은 점점 짧아져만 가고 출간된 직후에 반응을 단시간에 끌어올리기 위해 각종 이벤트페이지이며 카드뉴스(주로 카피는 편집자의 몫), 홍보 영상 제작(저자를 섭외하거나 내용 검수 및 저자 컨펌 또한 편집자의 일이 된다) 등 5년 전만 해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일들이 필수적인 업무로 자리 잡고 있다.
“저자 마케팅”이라는 것도 매우 중요해져서 (어쩐지 혹은 왜인지) 저자 담당인 편집자가 마케터와 저자 사이에서 해야 할 일들도 점점 늘어간다. 편집자는 책을 출간했으면 다음 원고로 넘어가야 하는데, 출간 이후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업무(행사 및 인터뷰 동석, 저자 sns 홍보 내용 전달, 각종 굿즈 제작 관련 컨펌 등)가 보통 한 달, 길게는 서너 달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물론 책이 많이 팔려서 길어지는 경우는 덩달아 신이 나는 기운으로 해치우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음 책의 일정이 마냥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부수적인 업무가 그때그때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속성을 가진 탓에, 보통 홀로 하는 본업(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원고를 보는 일)은 뒷전으로 미루다가 야근과 주말 특근, 혹은 집으로 원고 싸들고 가는 게 일상이 된다.
억울하기도 했다. 특히 연차가 적을 때는 저자 응대는 내게도 버겁고 어려운 일이라 나머지 소통은 담당 마케터가 왜 직접 하면 안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원고와 그 뒤의 저자를 떠올릴 때면 책 만드는 일이 어느새 ‘얼른 해치워야만 하는’ 과중한 업무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내 책은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겠다, 고 받아들이게 된 일이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