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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Jul 14. 2020

편집자의 업무는 어디까지일까요(2)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03

트위터에서 활동을 길게 해온 한 작가님의 책을 맡으면서였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담당 도서에 '전략도서'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 달의 부서 신간 매출을 70%는 담당하게 될 책이란 뜻이었다. 회사 내에서는 유머러스한 그림체와 내용은 재미있지만 실용적 쓰임이 있는 책이 아니라서, 트위터에서의 팬들은 구매까지 따라오지 않는다는 선입견으로, 밀 만한 다른 책을 찾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아니, 나만 재밌어? 나만 이렇게 작가님이 잘될 거라는 예감이 드는 거야?



마케팅팀이 관심 없으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일단 '전략도서'라는 1차적 판단은 회사가 내린 것이었으므로(보통 출간 2개월 전에 원고를 보고 판단이 내려지는데 번복은 없었다), 출간 후 화력을 보여주면 자연스레 마케팅 지원이 따라올 것이었다(아니 근데, 이 화력을 왜 담당 편집자가 붙여야 하는지 그건 그냥 덮어두고 지나가기로 하자). 마감을 하는 와중에 이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가 인쇄감리까지 다녀온 이후에, '친필사인본'을 만들자고 제안했다(지금은 안다. 미리 말하면 면지에 쉽게 사인을 하고 제본할 수 있는데... 처음 해보는 거라 책이 나온 다음에 시작해야 했다).     



마케팅은 난감함을 표출했다. 사인본 책을 서점마다 일일이 다른 파레트에 쌓고 관리해야 하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작가님이 사인하는 동안 책이 지저분해지면 독자 항의가 들어올 수 있다 등등 우려의 말들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의 사인은 특별해서 모두 받고 싶어 한다(소설가 분들의 손글씨도 인기이지만, 정말 만화가나 그림 에세이를 만드는 작가님들의 사인은 독자분들이 더욱 혹 한다), 다른 책도 얼마 전에 사인 작업을 하면서 저자 SNS에 작업 속도를 올리며 계속 관심을 끌었고 출간되자마자 2천 부 완판했다더라 하며 설득을 했다. 결국 오케이가 나고, 서점별로 사인본을 가져갈 부수를 정했다. 처음 할당된 것은 1000부. 그 다음은 작가님께 전화를 했다.


작가님, 하루에 몇 부 사인하실 수 있을까요?     



작가님도 첫 책 이후로 매우 오랜만에 내는 책이라 열정이 대단했다. 책이 나오는 날 회사로 오셔서는 꼬박 10시간 이상 사인을 열심히 해주었다. 그리고 첫날 대박이 났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일주일간 책에 둘러싸인 채 작업을 했다. 추가 주문으로 300부가 더 추가되었다. 작가님은 노동요를 틀어놓고 사인을 하고, 나는 20부씩 다시 포장을 하고. 모든 작업이 다 끝난 날 나는 용달차를 불렀고 서점 창고로 직접 책을 실어 보냈다(왜 이럴 때 편집자인 내 곁엔 아무도 없는지).


치열한 노동의 현장. 20부씩 묶어 서점에 용달보내고 남은 5부는 계란처럼 고이 싸들고 퇴근했다.


그 책의 결말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작가님의 사인과 그림을 sns에 경쟁하듯 자랑했고, 자연스럽게 바이럴이 계속되었다. 이 책은 그해 3,4분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해외로 수출도 되고 작가님은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모두 짐작하셨을지도 모르지만... >_<



나를 움직인 건 내 책이 내가 아니면, 지금 아니면 죽는다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담당하는 원고, 내가 만든 책과 관련한 일에 한해서긴 하지만 이런 일들을 내가 해야 할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다음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책 일정을 늦춰달라고 회사에 요청을 하며 살 길을 찾기도 한다).



어떤 책은 운이 좋아서 원고를 만나고 난 뒤 적게는 2~3개월 만에 독자들의 손에 쥐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책은 이 저자가 쓸 수 있을까 하며 미팅을 요청하고, 기획 아이템을 잡아가고, 저자의 샘플원고와 차례에 피드백을 하고, 저자가 원고를 완성하기까지 집필의 시간을 기다리고, 책이 나오는 과정(교정교열과 디자인 작업 등등)을 모두 거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날 때도 있다.



그런 과정을 오롯이 혼자 겪어내는 ‘담당 편집자’는 책이 나오자마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몇 달 간 서점 서가에 꽂혀 있다가 고스란히 반품되는 일은 겪고 싶지 않다. 또한 편집자는 회사라는 조직에 속해 있는 한, 저자가 그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알고 있는 이상(편집자인 자신의 노고도 함께 들어간 이상), 어떻게든 손익분기를 넘기고 이익으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한 사람이다.     



그런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출판사는 편집자에게 책을 만드는 과정에 들일 시간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의 책과 아닌 책은 그 만듦새가 얼마나 다른가. 그리고 책이라는 완성된 상품을 가장 먼저 만나는 마케터는 오래 품고 있었던 원고를 세상 밖으로 보내는 저자와 편집자의 마음을 인정해주고 책의 가치를 함께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 자신이 전혀 모르는 분야이거나 관심 밖의 저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심한 태도를 내비치는 마케터들을 본다. 책 밖의 1차적 판단자인 마케터들이기 때문에 편집자는 상처를 자주 받는다. 저자에게 어떤 매력이 있어 편집자가 이 책을 만들게 되었을지, 책을 만들면서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이었을지 등을 먼저 살펴줄 수 있는 마케터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편집자는 늘 기다린다.     



편집자는 엉덩이로 일한다, 는 말을 신입 때부터 들어왔다. 지금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책상 앞을 떠나 책을 내자고 제안하러 저자를 만나야 하는 외근이 잦아지는 시기에는 봇짐 지고 물건을 팔러 다니는 보부상의 마음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책이 나올 때까지는 편집자가 한자리에 오래 앉아 차분히 원고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필수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원고를 읽으며 이 원고만이 가진 뾰족한 컨셉을 찾고 내용에 질서를 부여하고 밭에 돌을 고르는 심정으로 오탈자와 윤문 교정을 하는 고요한 시간 말이다.


미처 업무시간에 못 본 교정지를 싸들고 집에 오면 반려묘가 대신 교정을 봐주기도 한다(아님).



근무시간에 이런 저런 회의를 하고, 저자와 마케터와 디자이너와 저작권 담당자 등등과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고 업무 진행과 분담을 하고 돌아설 때면 나도 모르게 매우 간절해지는, 오롯이 텍스트와 나만이 남는 시간.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비로소 명확해지는 그 시간이 때로는 편집자가 한숨을 돌리며 일의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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