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리 Oct 12. 2020

이게 왜 책이 될 만한 이야기인가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17

마감을 연달아 마치고 돌아서니, 어느새 10월.

이맘때쯤이면 출판사 편집부에서는 이듬해 출간리스트를 정비하고, 원고가 없어 비는 달은 없을지, 내년 사업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우리 팀은? 입고될 계획이 있는 리스트는 있으나, 아직 부족하다. 이번 달에 올해의 마지막 책임편집 책을 내고 나면 무엇이든 찾아내야 한다.


이런 초조한 마음을 지닌 한편, 어떤 책을 내야 우리 팀의 색을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성인도서는 이제 막 시작한 팀이니 아무런 색이 정해지지 않은 하얀 캠버스 같다. 팀원 각자가 내고 싶은 책과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가 잘 담긴 책의 균형을 맞추는 일. 격주로 기획회의를 하면서 맞춰가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인스타그램을 한창 쳐다보던 중, ‘북다마스(@book_damas)’라는 계정이 눈에 띄었다.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내 눈앞에 도착한 그 계정은 한눈에 봐도 귀여운 다마스 안에 책을 가득 실은 책방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올 1월부터 시작이라니 얼마 되지 않았구나. 유튜브 채널이 있다는 링크를 눌러보니, 계정 주인이자 대표이실 분이 재치 있는 티저 영상과 북다마스 브이로그를 올려두었다. 매주 업데이트라니, 매우 부지런하다. 그리고 또 브런치(https://brunch.co.kr/@bookdamas)를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글로 넘어간다. 왜 ‘이동책방’을 하고 싶었는지, 로망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어떻게 현실화하고 있는지 기록이 척척 쌓이고 있는 중이다.

     

‘아! 이거다. 이거!’     


머릿속 전구에 막 불이 켜졌다.


이게 왜 책이 될 만한 이야기인가?


이 질문은 기획을 시작할 때 매우 중요하다. 출간의의(출간 당위성)이자 독자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


첫째, 내가 책을 팔고자 하는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 즉 책덕후.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가리지 않는 이들은 ‘책에 관한 책’이라면 특히 관심을 두며 그 언저리로 서점, 출판사, 작가 등 책 주변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왜? 책이 좋으니까 책을 내는 작가를 동경하고, 책이 좋으니까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고, 좋아하는 책으로 가득한 서점에 가는 일은 늘 설레는 일이니까.

어떤 일에 환상을 갖고 있다는 건 참 건강한 일이다. 그 환상을 충족시켜줄 이야기라면(물론 현실을 보여주는 일도 중요하다. 다큐이면서 동시에 환상을 유지시켜줄 이야기... 바로 그게 필요하다) 독자들은 언제나 환영하기 마련이다.


둘째, 누군가는 상상만 했던 그 ‘로망’을 실제의 삶으로 실현하는 도전은 순수하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끌어낸다. 번듯한 공간에서 책을 가득 채우고 싶은 마음, 누군들 없을까. 다만 현실은 치솟는 월세를 감당할 만큼 단단하지 않으니, 공간을 해결해야 한다. 이때 주인의 입장에서는 자유롭게 언제든 떠나고(매일이 여행일 수는 없겠지만 방랑의 욕구는 충분히 채워지겠지) 손님의 입장에서는 매일 갈 수는 없는, 단 하루 동안 우연히 만나게 되는 서점이라면? 화면에 보이는 책만을 살펴보고(누군가의 개입이 있을 수밖에 없는 화면 구성이다) 무의식적으로 몰린 선택이 아니라, 서점도 우연히 마주치고, 책도 실물로 우연히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우연의 제곱으로 일어나는 기적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셋째, 북다마스 대표님은 준비된 사람이다. 어디서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sns 계정, 브런치 심지어 영상까지 준비해두고 있다. 이런 준비된 사람은 초기에 빠르게 연락을 할수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는 긍정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물론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내자는 제안을 거절할 리도 없고 말이다.


이 기획에 대해 잠시 짬이 났을 때 상사님뿐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슬쩍 운을 떼보았다.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에 혹시 나만 관심 있는 건가 하며 넌지시 던져보는 걸 즐긴다.     


“인스타그램에 북다마스라고 있는데. 이동 책방이라고 해요. 그런데 영상도 있고 브런치에 글도 쓰고 있더라고요?”     


반짝,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함께 빛이 난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북다마스 대표님은 실제로 실험해본 이야기들을 얼마든지 풀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운영하면서 느낀 희노애락을 실감하며 기록할 것이다. 카페든 서점이든 누군가의 영업장 앞 공간을 빌려 하루 동안만 나타나는 이 서점을 어린 시절의 방방이나 흔들목마 장난감을 태워주는 아저씨가 나타나길 기다렸던 것처럼, 조금 시간이 지나면 손님들은 자신의 동네에도 나타나길 날짜를 세며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 더불어 자신이 팔고 있는 독립서점물 혹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얼마든지 밤새워 할 수 있는 분이겠지.


언제 기획안을 쓸 수 있을지 책 만드는 업무 사이에 틈을 보고 있던 중, 어라, 책방무사 계정에서 북다마스를 소개했다. 추석 연휴 동안 제주로 내려간 북다마스는 요조 님이 운영하는 책방무사의 마당까지 도착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아아악. 안 돼. 이러면 책방무사를 팔로우하고 있던 출판 관계자들이(아마... 적어도 50명 이상) “북다마스”의 존재를 다 알게 되었잖아!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북다마스 대표님께 쪽지를 보냈다.     


그리고 결론은…… 친절하게 거절당했다(거절 이야기는 늘 무궁무진하다. 하하하).

독립출판물로 직접 출간할 계획이라고 하시며, 관심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브런치에 연재된 이동책방 창업기를 먼저 작은 책으로 출간했다. 공간과 사람, 책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했다고.


조금 김이 샜지만, 독자로 남아 기쁘게 책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기대감은 남았다(누가 만들어주는 책 읽을 때가 제일 좋은 편집자). 그럼에도 자꾸 주변에 북다마스를 홍보하게 된다. 이거 봤어요? 이런 사람이 있는데, 너무 흥미롭지 않아요? 하며(이렇게 브런치까지 쓴다).


이번 계기로 내가 기획거리를 어떻게 찾는지 조금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 싶은 최대치의 마음.

그 마음으로 에세이를 기획한다. 그게 책방이든, 여행이든, 입사 혹은 퇴사든, '할머니'라는 호칭으로 지워진 한 사람의 새 직업 도전기이든 엄마가 되는 첫 걸음이든. 누군가의 변화를 목격하는 것만큼 전염성이 큰 자극도 없는 것 같다. 일상에 시들해진 마음을 다시 설레게 만들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솟아나게 할 수 있다면, 삶의 변화를 먼저 크게 겪어낸 사람의 생생한 이야기만큼 깊은 위로를 줄 수도 없으니까.


아무튼, 북다마스를 운영하시는 김예진 대표님,

빠꾸 없는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언젠가 건강하게 북다마스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


저는 그럼, 다음 아이템을 찾아 오늘도 신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