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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Dec 04. 2020

책 만드는 편집자가 책을 읽는 방법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19


“오, 편집자세요? 책을 많이 읽으시겠네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라고 소개를 하면,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긁적긁적. 하하하. 오해를 풀고 싶다. 사실 이 일이라는 게, 책보다 (책이 되기 이전의) 원고를 많이 읽거든요.

신입 시절에는 책이 좋아서 책을 만들고 싶어서 출판사에 들어왔는데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벅찬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싶었다. 읽고 싶은 책은 이렇게 많은데,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왜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서점 직원이 되어야 했었나 보다, 나의 진로 선택을 살짝 후회하기도 했다(아아, 서점에 계신 여러분, 그곳은 맘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파라다이스인가요?)


편집자는 책이 되기 이전의 원고를 생각보다 많이 읽는다. 기획 단계에서 ‘원고 검토’는 그 범위가 무한하다. 소개받거나 투고받은 원고를 읽기도 하고, 에이전시로부터 소개받은 외서의 시놉시스, 요약본 혹은 검토서를 읽는다. 저자를 찾아 각종 인터뷰 기사 및 블로그, 브런치, SNS 등 읽고 또 읽는 게 주 업무이다(읽는 게 직업이라 누군가 '내 글 좀 봐줄래'라고 하는 작은 부탁이, 간혹 편집자에게는 '나에게 왜 일을 시키지' 하는 피로가 되기도 한다).

이후 책을 만들기 시작하면 완전 원고를 읽고 컨셉을 세우고, 읽고 교정을 보며 구성을 하고, 읽고 교정을 보고, 놓친 건 없는지 또 읽고, 최종 보도자료를 쓰기 전에 또 읽는다(책 한 권 만드는 데 대략 7~8번은 읽는다).


이렇게나 읽어야 할 원고가 많은데도 편집자는 비출판계 사람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 첫 질문의 기준을 대한민국 성인으로 잡는다면, 두 달에 1권을 읽는 평균(2019년 국민독서실태 조사 결과,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율은 52.1%, 연간 독서량은 6.1권)보다 많이 읽는다. 이렇게 책밥을 먹고 사는 편집자들이 참고용으로 책을 사고 여가용으로 책을 사는 걸 업계에서는 ‘초판 부수(책을 처음 출간할 때의 제작 부수)’ 기준이라고 자조 섞인 이야기도 한다. 2015년 이전까지는 초판 평균 3천 부를 찍었고, 그때 당시 출판계 편집자의 수가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출판 시장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초판 2천 부가 기본이 되었는데, 업계 편집자 수가 줄었다는 이야기로 통한다…….


이번에 할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책을 만드는 편집자인 나의 독서 루틴을 한번 살펴보았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는 어떤 기준으로 책을 어떻게 읽는가.


첫 번째, 업무와 관련된 책을 읽는다. 방금 말한 업계를 책임지는 초판 부수가 이에 해당한다. 알라딘 ‘새로 나온 책’ 카테고리는 출근 후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하루 사이에 등록된 책들이 분야 상관없이 정렬되어 있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업계 소식도 알게 되고(00작가가 출판사를 옮겼네, 이 책 편집자가 이직을 했구나 등), 트렌드 키워드가 잡히기도 한다.


앗! 전 직장 후배가 작업하고 있다던 책이 나왔네. 표지가 그 친구를 닮아 귀엽네. 전작이 베스트셀러였던 작가님 책이니 이번에도 판매를 기대해볼 만하겠구나.

요즘 트렌드는 ‘번아웃’인가, 올 초까지는 제목에 정확히 드러난 책은 없었는데… 연말이니 지칠 때도 되었지.

헉. 나의 재테크 선생님 책이 나왔잖아. 딱 1년 전 유튜브를 막 시작한 때에 뜰 거라 알아봤지만 나에겐 본격 재테크 책을 만들 만한 능력도 용기도 없으니 연락조차 할 생각을 안 했었는데, 이렇게 보니 담당 편집자가 부럽군…….


구시렁대며 장바구니에 추가를 누르다 보면 어느새 5만 원을 훌쩍 넘기는 것은 기본. 당일 택배 도착하는 맛에(괜시리 마음이 바빠진다. 지난 주에도 도착한 책이 있지만 이 책은 이번 주말에 꼭 읽어야 돼!!!) 사다 보면 책 기둥이 집 안 곳곳에 세워진다(괜찮다. 지금 안 사면 이런 책 또 안 내줄지도 몰라. 산 책은 언젠가는 읽게 되어 있어).


신간 외에도 당장 작업에 들어가도록 예정되어 있는 원고의 컨셉 방향,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같은 분야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찾아 읽기도 한다. 평소에 독서의 방향이 대중적이지 않았다면 참고도서를 찾기 어렵기도 하고(뭘 읽어야 할지 몰라서), 읽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다(그러니 평소에 짬나는 대로 읽어두자).

나는 남들이 많이 사는 책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독자들이 무엇에 현혹이 되었는지, 좋은 책을 알아보지 못하고 독서 수준이 낮다고 불평을 하기보다, 지금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욕구를 채워주는 책을 찾아 기획해야 한다. 다행히 출판사에서는 대부분 (한도는 있겠지만) 참고도서 구입비는 넉넉하게 지원한다. 내 돈 주고 안 살 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궁금해서 읽고 그 책만의 미덕을 발견해 기획에 반영하기도 하는 것. 잘 나가는 책, 화제의 책을 읽으면서 변화하는 독자들의 시선은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알아차릴 수 있다.


여기까지도 책을 사는 이유가 차고 넘치지만 또 있다. 함께 작업한 작가님의 신간, 앞으로 작업할 작가님의 신간(전작 중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작업 전에 읽어두는 게 차별화된 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소설가라면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전작을 모두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아끼는 동료의 애정 어린 책이 나온다면 산다. 그리고 되도록 빠르게 읽고 신간 홍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리뷰를 여기저기에 올린다. ‘우정 구매’일 수도 있고 ‘후원료’일 수도 있다. 신간을 읽고 피드백을 드리는 건 작가님에게 관심을 어필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좋은 요령이기도 하다.


(쓰다 보니 어쩐지 책을 구매하는 편집자의 핑계가 계속 되고 있는  같지만) 두 번째로 취미가 독서여서 읽는다(여기저기서 들리는 탄식의 소리). 어쩔 수 없다. 책이 좋아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책 읽기가 가장 좋은 휴식이자 오락이다. 특히 국내소설을 즐겨 읽는다. 출판학교 시절, 에쿠니 가오리만 알던 나에게 김연수, 김중혁, 편혜영, 김애란을 알려주신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대학을 졸업하고 문예지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늦게 눈을  수도 있습니다, 독서 편력이라는 것은). 이후 지금까지 14년째 국내소설을 꾸준히 읽고 있는 독자다(H문학상을   사서 읽고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읽다가  출판사에 입사해 H문학상 소설을 3권을 담당 편집했다. 그럴 때마다 벅차오르는 마음이란. 아직도 생생하다). 출판사의 시리즈를 따라 읽기도 하고 믿고 보는 작가님들 책은 신간 등록이 되었다 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구매해 읽는다.


소설이 좋은 이유라면, 국내문학팀으로 일할 때 이후로 소설 출간을 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과 떨어져 오롯이 이야기 속으로 세계 이동을 해버리는 쾌감이 있다(일과의 거리두기를 위해서 독서 분야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에세이를 읽을 때면 여지없이 업무 모드가 on으로 바뀐다). 나의 현실을 다 지우고 다른 세계에서 주인공의 시점으로 잠시 살아보는 것. 때론 현실보다 더 지독한 세상을 맛보기도 하지만 괜찮다. 책장을 덮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되는 정도의 문제니까.


소설을 읽으며 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힌트를 얻기도 하고. 더불어 오래 읽다 보니 새로운 장점도 깨달았다. 다른 분야의 도서보다 비교적 한국어 문장이 좋은 분야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문장력도 좋아졌다. 교정교열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눈에 익어서 잡아내는 부분도 많아졌다. 이제 막 편집 일을 시작한 분들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취미 활동이다. 더불어 다양한 작가님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분야이면서 독서 시장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덕력을 펼치기 좋은 분야이기도 하고.     


그럼, 대체 책은 언제 읽는가.

편집자는 업무 시간에 책을 읽어도 된다. 전혀 어색하지 않다. 참고할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그러다 꽂혀서 쭉 읽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날들은 연중 손에 꼽히며, 대부분 그때그때 요청되는 일과 진행하는 원고 교정 보기도 바쁘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내야 한다. 어떻게? 늘 손에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의외로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는 게 자투리 시간 활용으로 가장 좋고, 한 권을 다 읽을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나는 종종 #오늘의출근길독서 태그로 올리기도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멀리 외근을 갈 일이 있으면 책을 좀 더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랜 이동 시간도 괜찮아지기도 한다. 손에 혹은 가방에 책을 고르는 일이 어렵다. 하지만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책은 얼마든지 많으니까.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는 편이고, 읽다가 덮어둔 책도 십여 권이다. 흥미가 떨어지면 잠시 덮어두고 다른 책을 읽다가, 나중에 이걸 마저 끝내야지 하면서 돌아와 다시 책을 편다. 기억이 안 나면 몇 장이고 앞으로 돌아가 읽기 시작한다(심지어 처음부터 읽기도 한다. 정말 기억이 안 나…).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에 가장 큰 적은 두려움 같다. 다 읽지 못할 두려움. 그것만 버리면 세상 쉽다. 읽다 포기한 책이 수두룩이라고. 그럼에도 나랑 맞는 책을 찾아 또 책장을 뒤적거리고 온라인서점을 들락날락한다고.

무엇보다 TV가 없는 삶이 독서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원하는 프로그램만 골라보는 정도로 영상을 시청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연스레 책과 함께 보내는 것. 충전할 필요도 없이 펴기만 하면 나를 다른 세상으로 옮겨다 놓는 책의 매력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알아보고 즐기면 좋겠다.


세상은 늘 빠르고 소란스럽다. 책은 느리고 고요하다. 책은 직접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옆에 데려다 놓는다. 책은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동무가 되어준다. 책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고 싶은 사람에게 방향의 힌트를 준다. 그런 책을 읽고 싶다. 또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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