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07
비가 오는 월요일 출근길이었다. 늘 같은 시간에 횡단보도에 서서 역의 입구를 바라보고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7분 열차를 놓치면 지각인데…….’
모처럼 알람 시간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밥까지 챙겨먹고 나와서는 이런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니. 꾸물꾸물한 날씨가 기분을 더욱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건너편 역 입구에서 누군가 걸어나와 길을 건너기 위해 다가오는데 순간 눈을 의심했다. 찰나였지만 나의 고등학교 시절, 눈이 유난히 동그랗고 다정한 낮은 목소리를 가졌던 국어선생님이 겹쳐 보여서. 어느덧 내 나이의 절반이 지난 시간 만큼 그때 내 기억과 같은 모습일 리 없는데……. 한창 학생들에게 열정적이고 마음을 다해 아껴주던, 볼이 자주 상기되던 귀여운 선생님과 닮은 그 사람은 나를 무심히 교차해 지나쳐갔다.
나는 참 조용한 아이였다. 엄마 친구들이 놀러오면 엄마만 있는 줄 알았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나온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많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유치원 때는 선생님이 따라 하라고 힘차게 율동을 하는데도 엄마 치맛자락 뒤에만 숨어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 쉬는 시간에는 반 학급문고 책장 앞만 부지런히 다녀갔고, 학교 도서관이나 동네 도서관을 가는 게 취미였다.
그런 나에게는 뭘 사달라고 졸라도 꿈쩍도 안 하는데, 유난히 “책 사줘”에는 지갑이 잘 열리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가끔 아빠 친구들이나 친척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은이는 책을 참 좋아해요. 책 읽는 걸 너무 좋아해요.”
어쩌면…… 나의 독서습관은 엄마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가 어느새 내 것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엄마는 스무 살에 나를 낳고 온갖 고된 일들을 하며 돈을 벌었다(동갑내기 아빠는 늘 술에 취해 늦은 밤에 돌아왔기에 어린 시절의 내 눈에는 엄마 고생만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런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서 엄마 친구들이 수다를 떠는데 그 옆에서 책을 읽으며 어른들 이야기가 하나도 안 들리는 척도 했다.
“쟤는 책을 읽으면 집중력이 너무 대단해요. 불러도 대답을 안 한다니까. 호호호.”
엄마의 자랑 아닌 자랑에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붙들고 앉아 있던 아홉 살 무렵의 나. 그런 엄마에게 나는 방문판매 아저씨, 언니의 손을 잡고 우리 집으로 가자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철부지였다. 난감하기도 했을 텐데, 아이가 엄청 책을 좋아하네요, 로 시작하는 판매원들의 말에 거절도 잘 못하는 엄마는 결국 할부로 책장 하나를 가득 채웠다. 계몽사 세계동화, 이름 모를 출판사의 한국창작동화, 백과사전 세트까지. 그들이 가고 나면 엄마는 아주 무서운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 이거 하나도 안 읽기만 해봐. 혼날 줄 알아.”
나는 그날부터 신이 나서 손에 잡히는 대로 봤다. 물론 가장 먼저 책장이 하나씩 떨어진 건 『몬테크리스토 백작』 『기암성』과 같은 으스스한 추리물이긴 했지만.
친구들과 실컷 놀아도 숙제를 다 해놓고도
시간이 너무 많은 그 시절에
책상 위에 앉아서 책장 높은 곳에서 책을 뽑고
내 다리 반을 차지하는 무거운 책을 올려놓은 채
빳빳한 종이를 한 장씩 넘길 때의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참 좋다. 코끝을 스치는 새 책 냄새.
엄마를 괴롭히던 나의 방문판매 홀릭은 영어테이프 24개가 들어 있는 영어책 세트가 마지막이었다. 책에는 무려 디즈니 만화 친구들이 등장했는데, 나는 첫 테이프인 apple, airplane, banana를 벗어나지 못했고(참 유명한 성우 분이 직접 녹음에 참여한 상품이었다), 이걸 사 놓은 게 아까웠던 엄마는 혼자 듣다듣다 알파벳을 다 떼버렸고…… 지금도 영어를 읽을 줄 안다(나는 효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 살았던 동네에는 마을도서관 버스가 집 앞 골목까지 찾아왔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요일에 맞춰 찾아가면 친절한 사서 선생님이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았다. 달리는 도서관이라니. 누구 아이디어일지, 참 낭만적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시리즈 동화책을 열심히 읽어나갔을 것이다. 시간을 멈추는 주인공이 나와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거나 아이들이 탐정이 되어 어른들의 만행을 막고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
그런 책을 읽고 나면 어딘가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질 때를 대비해 비상 짐가방을 꾸려놓았고, 혼자 별 거 아닌 사건사고들을 기록하는 탐정수첩을 적기도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 혼자서 하는 프로젝트들이 그땐 많았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엄마가 퇴근하길 기다리며 엄마의 일터인 한의원(엄마는 3평 남짓한 탕약실에서 약을 달이는 일을 10년 넘게 했다. 일을 마치고 온 엄마의 품에서 나던 달큰한 한약 냄새를 나는 좋아했다)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도서관으로 종종 향했다. 서가에 꽃힌 책들을 하염없이 구경하다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여행기를 주로 빌려 읽었다. 언젠간 나도 이토록 낯선 곳들을 가볼 수 있을까, TV 속에서나 보던 풍경들 속에 있는 나를 끝없이 상상하기 좋았다.
이렇게 책을 친구삼아 살게 된 게 엄마 덕분이라면
글을 쓰게 된 건 오늘 아침 문득 떠오른 그 선생님 덕분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인생에 오래 기억될 국어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국어노트에 무엇이든 쓰라고 했고, 모든 아이들의 노트를 걷어가 착실하게 피드백을 해주셨다. 그 피드백 한 줄이 너무 좋아서, 나는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지난 주말에 본 명화 감상 리뷰나 나의 10년 후 모습이나(그땐 축구에 빠져 있던 때라 서른일곱에 나만의 축구장 관리인이 되겠다고 썼다), 유난히 마음을 울리는 노래 가사를 필사해 적어두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글에서 나를 알아봐주고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 파란색 플러스 펜으로 쓴 선생님의 칭찬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도 같다.
네가 쓰고 싶은 글을 써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
별거 아닌 이야기 같지만 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이런 모습이 있구나!
나를 믿어주고 놀라워해주고 감탄을 끝없이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음 글을 쓰게 된다는 것.
편집자 생활을 하면서 늘 피드백을 받고 싶어 하는 작가 분들에게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할 줄 몰랐고, 조금 지나서는 어줍잖게 좋고 나쁘고를 판단해버리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나고 난 지금은 응원의 마음을 진심을 다해 건넬 뿐이다.
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만 써주세요.
무엇이든 쓰면 그 다음은 제가 정리해볼게요.
답은 쓰는 사람에게 있다.
그걸 살짝 꺼내 보여달라고 속삭이는 존재, 비난하지 않을 누군가가 우리는 늘 필요하다.
거기서부터 편집자는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