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농사꾼과 철없는 간호사

by 별빛간호사

할아버지는 평생 소를 키우셨다.
해 뜨기 전에 밭으로 나가고, 소 여물 챙기고, 겨울에도 논두렁을 걸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이제는 병원 침대 위에서 내 얼굴을 보고 있다.

“할아버지, 많이 아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말 대신 입모양으로만 ‘조금’ 하고 대답했다.

나는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근데 할아버지, 나 예전에 아이스크림 많이 사줬잖아요.”

할아버지, 끄덕끄덕.

“또 사주세요.”
끄덕끄덕.

“그리고… 할아버지, 나한테 소 한 마리 준다고 했었잖아요.”

할아버지 표정이 살짝 멈칫했다.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끄덕끄덕.

“에이~ 나 소띠라고 소 한 마리 준다며!”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더니 눈을 가만히 감았다.
내 생각엔 웃음 참는 것 같았다.

“그럼… 저 갈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눈을 다시 떴다.
그리고 내가 나가는 걸 끝까지 지켜봤다.

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야, 너 진짜 소 줄 줄 알고 그러는 거냐.”

그날 병실엔,
소 한 마리 타령하는 철없는 간호사와,
웃음 삼키는 소 농사꾼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잠깐이지만
아픈 것도, 죽음도 잊었다.
그저 웃음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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