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간호사, 나는 아직도 죽음을 보는 게 어렵다.

by 별빛간호사

어느 날, 주말이었다.
항상 바쁘게만 지내던 나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한가로운 오후였다.

스산한 바람과 함께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던 날, 병원은 평소보다 더 고요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난 아이들을 참 좋아한다. 맑고 티 없이 웃는 얼굴은 언제 봐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계단을 뛰어내려오던 한 남자아이가 내 앞에서 멈췄다.
“안녕? 어떻게 왔니?”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작게 대답했다.
“아빠가 입원해 있어요.”

티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순간 당황했다.
뒤이어 어린 여자아이가 내려왔다.
“동생이니?”
“네.”

나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병동 휴게실로 올라갔다.
작은 과자와 음료를 건넸다.
“이거 먹고 힘내자.”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우리 병동으로 전동되었다.
내 또래보다 겨우 열 살 정도 많을까.
환자의 손가락에는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끼워져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가능한 한 기계의 소리와 자극을 줄인다.
마지막 길이 조금이라도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 숫자 하나하나를 끝까지 바라본다.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말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차마 그 기계를 떼지 못한다.


나는 그 중간에 서 있다.
이성과 감정의 경계에서.
가래를 뽑고, 정맥주사를 잡고, 진통제를 놓는다.
그러다 문득 보호자 어머니의 눈을 마주친다.
기진맥진한 얼굴에, 그래도 놓지 못한 사랑이 서려 있다.

그분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조용히 속삭인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곁을 지키는 일뿐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면서, 가슴이 꽉 막혔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그냥, 이런 삶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은 어쩌면 이 한마디뿐일지도 모른다.


잘하고 있어요.
충분해요.
잠깐, 쉬어가도 괜찮아요.


tempImageBxftWK.heic 퇴근 길, 생각이 많은 밤. 길을 그리고 비춰주는 환-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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