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간호사가 전하는 이야기
“화가 나요. 이제야 사는 재미 좀 보나 싶었는데…”
환자분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표정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아이들 다 키워 시집장가 보내고, 퇴직 후 시골에 조그만 주택을 마련해
고추 따고 상추 심으며, 사람 사는 재미를 조금 느낄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찾아온 병. 그 억울함이 눈에 서려 있었습니다.
나는 그저 옆에 조용히 서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손바닥 아래로 가느다란 어깨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들썩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더 안아드렸습니다.
말없이, 꼭.
한참을 그러다, 조심스레 얼굴을 가리던 손을 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간호사님 가봐요. 바쁘잖아요. 내가 이렇게 붙잡고 있어서…”
“괜찮아요.”
처음에는 낯선 스킨십에 놀라며 움찔하지만, 이내 곧 기대십니다.
여기 병실에서는,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다 꺼내놓을 수 없습니다.
‘환자’라는 이름을 가진 순간,
가족에게도 죄인이 되고, 사회에서는 투명인간이 되니까요.
가끔, 환자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호스피스가 뭐야?”
“한방에 죽는 주사는 없어?”
“제발 부탁이야… 제발 나 좀 살려줘…”
나는 대답 대신, 그 손을 조용히 잡아드립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그분도 알고, 나도 압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
그분은 단념하고 침묵 속으로 들어갑니다.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침대에 붙박인 하루들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헛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가족과의 시간을 마련하고,
예술 활동, 정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합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이,
가능한 한 슬프지 않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 밤 창문을 바라보는 환자의 얼굴은
결연한 의지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체념,
그리고 아련한 후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기억합니다.
창밖을 보며 속삭이던 그 수많은 눈빛과 손짓들을.
그분들이 남긴 마지막 말,
그 침묵 속에서 전해진 이야기들.
그 말들이 내 삶을 붙잡아줍니다.
내가 후회 없이 살기 위해,
오늘도 나는, 묵묵히 나의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