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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아이의 웃음과 죽음의 평화 사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 호스피스 간호사의 기록

by 별빛간호사

밤 근무 중이었다.
임종을 앞둔 한 어르신의 병실엔 조용한 슬픔이 흘렀다.
가족과 친지들은 차례로 작별 인사를 전했고, 병실 안은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환자분은 눈이 유난히 맑고 깊으신 분이셨다.
어느 날은 내가 한창 분주히 움직일 때
“힘들죠?”
“일이 참 많죠.”
조용히 말을 걸어오셨고,
내가 자신의 자녀 또래라며 “힘내요. 간호사님.”
따뜻한 미소로 응원해주시던 분이었다.

그분의 인생 마지막 여정을 지켜보며, 나도 마음을 다잡아가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놓은 봄밤,
그 순간—
바깥에서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밤중에…? 무슨 아이 웃음소리지?’
처음엔 어수선한 감정에 조금 거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웃음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맑고 선명하게.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나는 조심스레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병동 아래 테라스에, 침대에 누운 한 환자분이 계셨고
그 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손녀가 환하게 웃으며 뛰어놀고 있었다.

환자분은 조용히, 아이의 모습을 눈에 담고 계셨다.
‘하- 평화롭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제 막 시작하는 생명의 웃음과, 삶의 마침표를 찍고 있는 한 영혼의 숨결이 이 밤, 한 자리에 머무르고 있구나.’

그 웃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생명이 내는 숨결이었다.
살아있다는 증거였고,
내가 오늘도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이유였다.

그날 밤, 꼬마 아가씨의 웃음소리는 나에게 음악이 되었다.
고된 근무 시간에도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고
지친 나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꼬마 아가씨. 당신의 웃음은 누군가에게 오늘 하루를 견딜 이유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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