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할머니, 진짜 나 좋아했나 봐요”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다" ― 호스피스 간호사의 기록

by 별빛간호사

병원 복도를 걷다 보면
몇몇 병실 앞에는 유독 향기로운 공기가 맴돈다.
그날도 그랬다.
치매 말기 어르신이 계시는 병실.
나는 근무 중이었고, 그 어르신은 또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언니, 밥 먹었어요?”
“언니, 나 아파요. 우리 엄마 보고 싶어요…”
나는 하루에도 열 번쯤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열 번쯤,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어요.
저 별빛 간호사예요. 어제도 왔었죠?” 하고 웃어드렸다.

하지만 기억은
무참히 매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가끔 어르신은 날 “선생”이라 부르기도 하고,
“아가”라고도 하셨다.
어떤 날은
“내 딸은 얼굴이 동그래요. 당신은 납작하네요” 하고 웃기도 하셨다.

그날도 어르신은 나를 전혀 몰라보셨다.
나는 평소처럼 미소 지으며 입 주변을 닦아드리고 손을 정리해드렸다.

그런데—
나가려는 순간, 어르신이 내 손을 꽉 잡으셨다.

“별빛 간호사님 맞지요…?”
“…네…?”
“내가 매일 잊어버리지만…이상하게 당신은 손만 잡으면, 안심이 돼요.어떻게 그럴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도 사라졌는데
손의 감각만은 기억되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진짜 별빛간호사님 좋아했나봐요.”
그 말은, 치매로 조각조각 흩어진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진짜 마음이었다.

그 어르신은 몇일 후 조용히 떠나셨다.
아무 고통 없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나는 그날 이후로도 계속 생각한다.
‘사랑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는 말.
그건 어쩌면, 손의 온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말로 다 하지 않아도,
기억하지 못해도,
사랑은 마음에 남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불 좀 덮어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