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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고통 끝에서야 사람다워지는 걸까?”

호스피스 병원 간호사의 기록

by 별빛간호사

한 환자가 있었다.

그분은 평소 다소 날카롭고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었다.
옆자리 환자가 아프든, 쉬고 있든 상관없이 병실 불을 환하게 켜고 음악을 틀곤 했다.
마치 ‘나는 나대로 살겠다’는 태도로 병실 안의 작은 우주를 지배했다.

그러던 그가 점점 지쳐갔다.
기운이 빠지고, 표정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항암 치료가 가능한지 확인받고 싶어요."

큰 병원에 예약을 잡고 외진을 다녀온 날, 그는 말없이 병실로 들어와 침대에 조용히 앉았다.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고, 눈빛엔 생기가 없었다.

"항암은 어려울 것 같대요…그리고 그렇게 불쑥 찾아가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을 남기고는 오후 내내 잠만 잤다.
늘 식사에 간식까지 잘 챙기던 분이었는데, 그날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무겁고 아팠다.

그리고 그는 병원을 다녀온 후, 이런 말을 남겼다.
"그 원장님도… 자기 환자가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마음에 차갑게 대하신 걸 거예요…"

나는 그 말에서 이상하게 오래 맴돌았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깊이 다친 사람의 목소리였기에.
그리고 생각했다.

왜 사람은, 고통 앞에서야 비로소 겸손해질까.
왜 실패를 겪고 나서야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게 될까.
왜 무너진 다음에서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될까.

우리는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
넘어지고 깨질 때, 비로소 타인의 상처에 눈이 간다.
무릎이 닿는 그 땅바닥에서야, 우리는 진심을 배우기 시작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기에.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어야 하기에.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에.

겸손은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걸 나는 배웠다.
고통은 사랑을 향한 길이라는 것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병실에서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안의 연약함과 그 너머의 따뜻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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