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이 살린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결국, 사랑이었다
오늘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노래에도, 시에도, 책 속에도 늘 등장하는 단어, 사랑.
도망치듯 달려가도 결국 다시 머무르게 되는 곳도, 사랑.
아침 데이 근무. 환자분들께 인사를 드린다.
눈 주변에는 밤새 어떤 꿈을 꾸셨는지… 눈물자국이 남아 있다.
노오란 눈곱, 말라붙은 침 자국.
그 얼굴 위에 삶이 남긴 무늬처럼 조용히 앉아 있다.
미지근한 물을 적신 손수건으로 살며시 얼굴을 닦아드린다.
그러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싫다, 하지 마라” 하신다.
나는 문득 묻는다.
“왜 우리는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처럼 작아질까.”
속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머리를 빗어드린다.
학교 가기 전 아이를 말끔히 씻겨 보내던 엄마의 손길처럼.
이가 없어 밥을 씹기 어려운 환자분에겐 반찬을 잘게 잘게 썰어드린다.
소화가 잘 되도록, 목넘김이 편하도록.
그 모습에 언제나 쌈짓돈을 쥐여주며 “맛있는 거 사 먹어라”고 하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 따뜻하고 짠한 손길.
손톱과 발톱은 조용히, 그러나 성실히 자라 있다.
주무시는 틈을 타 손톱깎이를 들지만 기척을 느끼고 몸을 뒤척이시는 환자분.
그래서 몇 개는 어설프게 남긴 채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미용실은 사치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병동엔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멋쟁이 할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머리 스타일을 고민하며 내게 묻는다.
깍쟁이 귀염둥이 할머니는 머리를 너무 많이 자를까 봐 걱정하신다.
또 어떤 분은, "그냥 다 밀어달라고. 흉하니까."
항암 부작용으로 듬성듬성 남은 머리카락이 보기 싫으시단다.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순 없지만 그날만큼은 병원이 살짝 설레는 공간이 된다.
미용실이라는 작고 소중한 이벤트가 끝난 오후.
긴장을 놓은 환자분들은 선선한 에어컨 바람 아래 달콤한 낮잠에 빠져든다.
그 순간은, 어떤 꿀보다도 달다.
사랑은 향기를 남긴다.
그 향기는 말이 없지만 오래 남는다.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기억에 오래도록 머무는 향기.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슬며시 다가와 사랑의 향기를 남기는 그런 간호사, 그런 인간, 그런 이야기꾼.
“결국, 사랑이었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