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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길 Nov 02. 2023

거미의 협상술

- 은밀히 패스트로프를 난간에 내리는 것은 거미의 숙명인가?

 이 가을, 네 번째 시집이 나왔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더 깊어지는 계절을 향한 하나의 과정일 것입니다.

작품집에 해설과 표사를 선사해 주신 임채성 시인님과 박명숙 시인님, 출판을 정성스럽게 맡아준 도서출판 '고요아침', 그리고 발간비를 지원해 주신 대전문화재단에 감사드립니다. 


거미의 협상술 : 네이버 도서 (naver.com)


거미의 협상술


볕이 든 유리창에 실금이 무수하다. 창틀 서로 깍지 끼고 태풍 몇을 건넜는데 

그 여름 젖은 몸살이 지문으로 떴는 갑다.


조명의 각에 맞춰 스크래치 선명하고 상처는 상처끼리 어깨를 결속한 채

겹겹이 두른 의지를 허공으로 펄럭인다.


농성이 깊을수록 도지는 어질머리,  북풍보다 한발 앞서 지상에 닿으려면 

음각된 저 투명 창을 쩍! 갈라야 한다.


어쩐다 속보로 당도한 협상 소식, 견고하던 스크럼이 고공에서 흔들린다.

은밀히 패스트로프를 난간에 내리는 거미.




新 어부사시사        

  

그물코 다 기웠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샛바람 잦아드니 갈앉은 배꾼 근심

잔 너울 가볍게 살랑 봄 햇살을 싣고 가자.    

 

바닷길은 한길이라 고향으로 나 있다며

비릿한 향수병에 배를 탄 이국 청년 

저녁답 찬 노을빛에 서툰 말은 얼붙고.    

 

몸덩이만 성하다면 노동요는 만국 공용

이어라 이어라 지국총 어사와*

저 깊은 바닷속으로 꿈을 얽어 던진다.     

 

돛 디여라 돛 디여라** 저 큰 달 어찌 싣나

그물은 숭숭하여 다 흘러도 만선이니

별빛을 총총 알 박은 이 바다는 두고 가자.     


닫 디여라 닫 디여라*** 하마 날이 밝는다

간밤에 미끄덩 빠진 그달은 그만 잊고

파다닥 튀는 활어의 짧은 해를 묵상하자.  

   

어창 문 어서 닫자 뭍의 근심 숨어들라 

마중나온 소주잔에 알큰하게 오른 취기

입 풀린 안남 청년****이 제 바다를 한 짐 푼다.   

       

* 이어라 이어라 지국총 어사와 :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서 차용. 노 젓는 소리

* 돛 디여라 돛 디여라 : 돛 내려라 돛 내려라

* 닫 디여라 닫 디여라 : 닻 내려라 닻 내려라

* 안남 청년 : 베트남 청년     


거미의 협상술 : 네이버 도서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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