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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길 Jul 15. 2024

화의 틀을 불사르다

- 火의 다비

우리 몸속의 쓴 뿌리! 그중 하나인 화를 잘 다스릴 수 있다면 삶은 덜 황폐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크리스천이지만 불교적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써봤다. 잠시 헛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성파시조문학>이란 곳에 다음 두 작품이 실렸는데 아마도 이 잡지에는 마지막 투고 작품이지 않나 싶다.




火의 다비   

       

슬픔을 빼곡 적은 만장 행렬 이제 멎고

포개진 장작더미 길게 벋은 화염이

머리를 풀어헤치듯 먼 데로 길을 낸다.  

   

가는 이 앞세우며 더 깊어진 산의 골짝,

별리를 이내 맞은 마음 골도 같이 깊어

도랑물 타고 따르는 사부대중 염불 소리.    

 

일생을 다 덜어낸 수행의 법구인데

해진 곳 덧대 누빈 안쪽마저 사르는가

난대로 돌아서는 길 폭죽 같은 꽃불 튄다.    

 

큰스님 다비 앞에 두 손 모은 수행자들,

시시로 불을 놓던 화(火)의 틀을 종일 살라

해탈한 서쪽 하늘에 인장 같은 다짐 건다.




늙은 옥수수

- 어떤 염화미소         

 

산비알 자갈밭에 홀로 선 옥수숫대

하루의 기울기를 그림자로 재다가

이따금 갈바람 불면

하늘 한 번 쓸다가     


낙오한 매지구름에 피난길 겹쳐지면

산간을 일궈내며 쟁기처럼 몸이 울던

무거운 화전의 날을

춤사위로 털다가     


낮달에 빛이 드는 저물녘 가장자리

여든 해 공양하듯

익다가 무르다가

듬성한 치열만 남은 저 웃음꽃 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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