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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May 18. 2024

은퇴 없는 세상은 천국일까?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우리는 은퇴를 꿈꾼다. 경제력만 문제가 없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일단 다음에 뭐 할지는 그때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남는 것이 시간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 아버지들은 YTN, JTBC를 보고 여생을 보내신다. 그럼 우리는 OTT나 Youtube를 보면서 남을 생을 채우게 될까?  이번글은 남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공:  미디어 캐슬


동경대 출신으로 대형 은행에서 승승장수하던 타시로 소스케는 출세경쟁에서 삐끗하여 자회사로 좌천된 채 정년퇴직을 맞이한다. 가족들은 은퇴파티를 열어주면서 이제는 일하지 말고 편안하게 살아보라고 격려한다.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자신은 세상 사람들에게 끝난 사람이라고 취급되고, 일 하나만 바라보고 걸어온 소스케는 어찌할 바를 몰라 망연자실한다. 미용사인 아내 치구사는 풀이 죽은 남편에 무관심했다. 거기에 딸까지 연애나 해보라고 조롱해 다. 세상엔 이상한 취향의 여자도 많다면서 말이다.


소스케는 무한정으로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써보려고 이것저것 찾아본다. 하지만 딱히 큰 특기가 없는 정년 퇴직한 일류대 출신 남성에게 직업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헬스클럽에서 만난 젊은 IT기업 사장의 초청으로 그 회사에 고문역을 맡게 되지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소스케는 다시 일하는 끝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일본의 장기 베스트셀러, 끝난 사람


영화 <끝난 사람>(2018)은 일본 소설가 우치다테 마키코의 동명소설 <끝난 사람>을 영화화한 것이다. 원작 소설은 일본에서 15년간 장기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감독은 나카다 히데오(1961~)가 맡았는데 <여우령>(1996), <링>(1999), <링 2>(2000)로 일본에 호러영화 붐을 만든 감독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코미디이지만 어떻게 보면 호러 같기도 하다. 은퇴를 사전 장례식이라고 부르며 흑백으로 처리한 장면은 제법 섬찟하다.


주연인 소스케역에는 타치 히로시가 맡았다.  영화에서 럭비 장면이 제법 나오는데 고등학교 시절 정말로 럭비부 주장을 했다고 한다. 휜칠한 키에 수려한 마스크가 정말로 동경대 출신 같은 외모이다. 이 영화로 42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소스케의 너무 젊어 보이는 부인역에는 구로키 히토미가 맡았고, 영화 <철도원>의 히로인 히로스에 료코가 썸녀 역할을 맡았다.


료칸, source: wikimedia commons by Reggaeman


은퇴 후 첫날 저녁, 아내의 미용실로 마중을 나가 예전에 아이와 갔던 공원에 들른다. 벚꽃을 바라보며 옛 시인의 하이쿠를 읊조린다. 너희들도 나랑 다르지 않다고, 모두 은퇴를 할 거라고 말이다.


'떨어진 벚꽃, 남아 있는 벚꽃도 다 지는 벚꽃'

散る桜 残る桜も 散る桜

- 에도시대(江戸時代) 선종의 일파인 조동종(曹洞宗)의 승려 시인, 료칸(良寛)의 하이쿠 -


그리운 기억을 되살리려 하지만 아내는 냉담하게 다시는 미용실에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지금까지 소스케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아니며, 아내도 자신의 인생이 있다는 것이다. 동반자라는 말이 이때처럼 허무하게 들린 적도 없다.


고전경제학의 케인즈, 미래예측이 틀리나


케인즈, source : wikimedia commons by IMF, public domain


경제학자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1931년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에세이에서 기계가 대부분 노동을 해줄 2030년에 인간은 주 15시간만 일하면 될 거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은퇴를 하지 않고 말이다. 그는 2030년이 되면 자기 손자 손녀 세대들이 마침내 저축이나 재산 축적 같은 경제 활동에서 해방돼 더는 일 하지 않고 권태로울 정도의 풍요로움 속에서 예술, 여가, 시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은 안 하고 소비와 여흥의 주체로만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2030년이 코앞인 상황에서, 우리는 그의 예측이 잘못됐다는 것을 다. 일을 안 하는 세상과 일이 없는 세상은 다르다. 휴가도 회사를 다니면서 쓰는 것이 꿀맛인 법이다. 무한정 남은 시간은 휴가가 아니다. 30년 공부하여 30년 직장 생활하면 대부분의 직장인은 은퇴한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로 더 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머지 30년을 놀고만 있기에는 너무 무료해서 일거리와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AI 이후, 인간의 쓸모는?


한편 AI가 발달하고 로봇이 생산수단을 대체하면서 과연 인간의 생활이 어떻게 바뀔지 많은 미래학자들은 고민하고 있다. 2023년 11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AI 노출 지수 순위 20%에 해당하는 국내 취업자의 약 341만 명(전체 취업자의 12%)이 AI 기술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적으로 많은 기업의 고객상담전화가 AI로 대체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완전 대체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먼저 해당 직종의 임금 수준이 낮아질 것이다. 이 영향도 결국 우리의 노동환경이 바뀔 것이다.  은퇴까지 가지 않고 더 일찍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나라도 2025년에는 만 65세 이상 인구가 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超高齡社會, Super-aged Society)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50년에는 그 비율이 40%가 된다고 한다. 특히 우리는 노인빈곤율이 높아 더욱 걱정이다. 선배,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생존의 공포 속에서 우리는 은퇴 후에도 AI를 피해서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생 2막 또는 3막을 어떻게 실현할지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아니면 AI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던가 말이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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