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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22. 2022

백악관은 백악이 아니다.

지질학과 건축물 여행


세계를 좌우하는 하나의 장소를 꼽으라면 당연히 미국의 백악관(白堊館)이다. 미국 말로는 White House(하얀집)인데, 어떤 이유로 우리에겐 백악관으로 알려져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백악(白堊, chalk)

영국 도버의 white cliffs, by fanny,  wikimedia commons


백악은 석회질로 이루어진 퇴적암이다. 대개 단세포 동물인 유공충이나 석회조, 암모나이트 등 얕은 바다 미생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백악이 나오는 지역은 옛날에는 바다였다는 이야기다. 이 가루를 뭉쳐 우리가 아는 분필을 만든다. 백악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Dover) 해안에 잘 노출되어 있다. 백악을 포함한 지층은 주로 상부 백악기 지층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중생대 백악기(Cretaceous Period)라는 지질시대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백악으로 지어지지 않았다. 당초 사용된 석재는 아쿠아 크릭 사암(Aquia Creek Sandstone)이었다. 사암은 풍화와 오염에 약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외장재로 많이 쓰이지 않는다. 살짝 결론을 이야기하면 화재가 난 건물을 백색으로 칠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건축과정을 알아보자.


백악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1732~1799)은 1789년 취임 후 3군데의 건물을 전전하다가 2년 후에 대통령 관저 부지를 정했다. 그러나 그 부지가 습지여서 나중에 애를 먹이게 된다. 그 후 8년 뒤인 1800년 11월에 완공되었다. 제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1735~1826)가 처음 사용했다. 당시 이름은 ‘대통령의 집(President’s House)였다. 1812년 미영 전쟁 이전부터 백악관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최연소 대통령인 26대 시어도르 루스벨트(1858~1919) 시절에야 정식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미영 전쟁 당시 영국군과 캐나다군은 1814년 워싱턴 D.C를 점령하였다. 대부분의 주요 관청 등이 불살라지고 철거되었다. 이때 백악관도 불살라진다. 지어 진지 15년 만의 일이다. 당초 설계한 건축가 제임스 호반이 복구작업을 맡았는데 불탄 흔적을 없애기 위해 외벽을 하얗게 칠해 버렸는데 이 때문에 백악관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그 후 남북전쟁 때도 훼손되어 꾸준히 보수공사를 했는데 바닥에 물이 차고 외벽에 금이 가는 등 정상적인 건물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백악관, by Carol M. Highsmith, Wikimedia commons


지금은 백악관은 제22대 대통령인 헤리 S. 트루먼이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당시 건물은 껍데기만 멀쩡했을 뿐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느 날 2층의 피아노 다리가 1층 천장을 뚫고 삐져나왔다고 한다. 이에 외벽만 남기고 골조를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축했다. 따라서 현재는 외벽에만 흰색 칠이 된 사암을 두른 건물이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백악관은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되고 증축되어 권력에 맞는 품격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재클린 케네디 이후 영부인들이 바뀔 때마다 꾸준히 리모델링되고 있다. 


아쿠아 크릭 사암(Aquia Creek Sandstone)


아쿠아 크릭 사암의 채석장, by USCapitol,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아쿠아 크릭 사암(Aquia Creek Sandstone)은 갈색에서 연회색 프리스톤(free stone)의 일종이다. 프리스톤은 구성 알갱이가 작고 얇은 퇴적암으로 깨지거나 쪼개지는 성질이 없어 어느 방향이나 자유로이 절단할 수 있는 돌을 말한다. 그래서 조각, 건축 등에 많이 사용된다. 일설에 의하면 이 프리스톤을 조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프리메이슨(freemason)이 유래됐다고 한다. 전설적인 비밀결사조직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쿠아 클릭 사암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의 건축 공사에 널리 사용된 갈색 ~ 옅은 회색의 사암이다. 백악관을 비롯하여 국회의사당 등에 사용되었다. 그 외의 주요 사용처는 조지 메이슨의 건스턴 홀은 물론 조지 워싱턴의 마운트 버논의 계단 및 산책로,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의 크라이스트 처치, 버지니아 리치먼드 카운티의 에어리 마운트, 아퀴아 교회 등이다. 


이 사암은 워싱턴에서 남쪽으로 약 64km 떨어진 버지니아주 스태퍼드 카운티(Stafford County)에 있는 채석장에서 생산되었다. 백악기 아쿠아 크릭 사암은 둥근 조립질 내지 세립질의 석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리카로 결합되어 있고 점토 알갱이가 포함되어 있다. 이 사암은 전형적으로 회백색이나 황갈색이며, 때로는 붉은색, 노란색 또는 담황색의 줄무늬나 음양이 있어 따뜻한 느낌을 낸다.


버지니아주 스태퍼드 카운티, 출처: 구글 지도


1694년 스태퍼드 카운티의 아쿠아 크릭에 있는 위긴튼 섬에 채석장이 세워졌다. 여기서 산출되는 아쿠아 클릭 사암이 정부 청사의 주요 재료로 선정되자 정부를 대신하여 워싱턴 DC의 기본계획을 설계한 프랑스의 피에르 찰스 랑팡(Pierre Charles L’Enfant)이 1791년 위긴튼 섬 채석장에 배치되어 연방 도시 재료로 구입했고, 그래서 채석장은 그 후 정부 섬(Government Island)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돌은 아쿠아 강을 따라 포토맥 강으로 내려가는 뗏목에 실려 강둑으로 옮겨져 작은 블록으로 나뉜 후 마차에 실어 워싱턴 DC로 이동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영국군은 1812년 전쟁 중에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가옥을 모두 불태웠다. 이 화재로 사암에 금이 가고 박살이 났으며 초기 공사 때 에든버러에서 초청된 석공 중 한 명인 제임스 매킨토시가 감독하에 광범위한 수리를 진행했다. 두 건물 모두 손상을 숨기기 위해 흰색 페인트칠을 했는데 이는 또 부드러운 돌을 침식과 풍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단점이 드러나면서 그 후 외부용 석재 사용을 피하게 되었으며, 마침 가장 옅은 색의 석재도 고갈되어 사용이 감소하게 되었다.


아쿠아 크릭 사암 건축물


이 사암의 마지막 주요 건축물 중 하나는 1827년경 찰스 불핀치(Charles Bulfinch, 1763~1844, 미국 태생 최초의 건축가)가 설계한 미국 국회의사당 문(gatehouse, 총 8개)였다. 현재는 백악관과 가까운 컨스티튜션 에비뉴 등으로 이전한 문들은 1938년에 다시 지어야 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처럼 사암은 초기에는 용이한 사용 가능성과 조각에 유리한 점 때문에 널리 사용됐으나 기후에 대한 민감성 때문에 나중에는 주로 실내 장식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불핀치 게이트하우스, by AgnosticPreachersKid, Wikimedia commons

아쿠아 크릭 사암을 잘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미국 국회의사당과 국립 초상화 미술관(구 특허청 건물) 안뜰, 사암 갤러리의 평원 스쿼트 기둥이다. 국회의사당에서는 로툰다 홀(원형 평면을 갖는 공간, 돔 아래 중앙홀)에 인접한 방의 벽과 기둥과 나선형 계단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미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 by Joyofmuseum Wikimedia commons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이탈리아에서는 대리석을 사용한 건물이 많고 독일 교회는 유난히 사암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그 암석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장을 사암으로 쓴 건물이 많지는 않지만 진주성의 성곽이 사암으로 되어 있다. 지질학적 측면에서 건물을 본다는 것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우리도 다양한 암석을 건축에 이용하여 많이 이야기와 디자인을 함께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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