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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Nov 07. 2022

우리 집 뒷산은 서어나무 군락지

지질학과 식물생태

분당 서울대 병원 뒷산은 불곡산(335.4m)이다. 성남시에서는 둘레길인 누비길을 지정했는데, 광주로 넘어가는 태재고개에서 미금 IC가 있는 동원동까지의 길을 불곡산 길로 부른다. 8.8km로 4시간쯤 걸린다.



경험으로 보면 불곡산의 가장 편한 들머리는 골안사 입구에서 올라가는 길이다. 능선까지 약 500m 정도니 큰 준비 없이 올라가는 동네 뒷산이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데 바위보다는 작은 돌들이 무질서하다. 보살님 이야기로는 지난여름 수해를 입어 길이 엉망이 됐다고 한다. 여기도 힘들었구나 생각에 지난여름의 그 우악스럽던 비가 다시 밉다.

이 지역은 경기 육괴에 속하며 선캠브리아기 호상 흑운모 편마암 지역이다. 신선한 암석을 보면 검은 줄무늬가 흰 바탕에 들어가 있다. 검은 줄이 흑운모인데 풍화에 상대적으로 약해 떨어져 나가 암석을 단면으로 보면 그 부분만 골이 파여 있다. 좀 더 큰 스케일로 보면 그 부분이 떨어져 나와 암석이 판상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무늬가 있는 돌, 판상으로 되어 있는 계단 돌 모두 편마암이다. 편마암으로 되어 있는 산은 물 빠짐이 좋지 않아 사태가 날 가능성이 높다. 불곡산도 그런 산이다.

불곡산 다른 골짜기에는 대광사라는 천태종 대사찰이 있다. 구인사 직할이다. 경부고속도로에서도 보이는데 무려 동양 최대나 되는 목조 미륵보전과 국내 최고 높이의 미륵불 좌상이 있다. 평소 큰 걸 좋아하는 분은 볼만할 것이다. 주차장도 있고 카페도 있고 전망도 좋다.

이번 들머리에는 골안사라는 작은 절이 자리 잡고 있다. 특이하게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이다. 창건된 지 250여 년 된 조선 후기 사찰이다. 원래는 ‘불곡사’이던 것을 성오 주지 스님이 ‘골안사’로 바꿨다고 한다. 분당 개발 전의 옛 주민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등산로를 앞에 두고 남면(南面)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8작 지붕 2익공계 주심포 건물이며 청기와를 얹고 있다. 석가모니 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본존불은 원래 석불인데 개금을 심하게 하여 원형이 안 나타난다. 머리의 크기가 커서 균형을 잃은 모습이다. 육계에는 정상 계주가 있으나 중앙 계주는 없다. 이마엔 백호가 있고 삼도와 통견의에 수인은 양쪽 다 무릎에 얹은 형태로 특이하다. 편마암 판석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야트막한 산에는 8할 이상이 잎지는넓은잎나무이다. 바늘잎나무는 기슭에는 아주 가끔 보이고 정상 능선에 군락이 종종 보인다. 교목으로 때죽나무, 바늘잎나무로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넓은잎나무로는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물박달나무 등이 눈에 띈다. 따라서 습기가 많고 비교적 비옥한 토양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을 오르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노란 잎이 있다. 다른 낙엽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게 말라 떨어져 있는데, 이놈들만 제모양을 갖추고 있어 못 볼 수가 없고 제법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잎이 하트 모양 내지 삼지창 모양으로 생강나무이다. 원래 꽃은 산수유와 비슷하나 잎이 다르다. 갓 자란 나뭇가지를 자르거나 잎을 비비면 생강 냄새가 풍겨 생강나무라고 하고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 개동백나무, 산동백나무라고 불리며 생강나무 씨에서 짠 기름을 동백기름 대신 사용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춘천 실레마을이 고향인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은 1936년 5월 잡지 <조광>에 ‘동백꽃’을 발표한다. 눈치 없는 소작농의 아들이 주인집 딸의 프러포즈를 이해 못 하는 에피소드를 그린 단편이다. 여기에 나오는 동백꽃은 사실 생강나무를 의미한다. 진짜 동백은 춘천에서 보기 어렵다. 동백꽃이 나오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김유정은 당시 명가수인 박녹주를 스토킹 한 일로 유명한데, 연희전문 재학 시절에 우연히 본 박녹주에게 반해 죽을 때까지 오늘날로 보면 심하게 스토킹 하며 생을 마쳤다고 한다. 타인의 로맨스를 너무 깎아내리는 것 같지만 어쨌든 ‘동백꽃’에서 보이는 순수하고 짜릿한 감성을 실생활에서도 지니고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불곡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고 근처로 가는 길에는 드물게 소나무가 살아남아 있다. 넓은잎나무에 밀려 산 정상에만 명목을 유지하는 바늘잎나무들이 불쌍한 중년 남자를 보는 듯해 마음이 안쓰럽다. 정상의 북쪽으로는 소나무류가 있는 반면, 남쪽 기슭으로는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대략 20여 그루 정도가 소나무 류보다 훨씬 큰 키로 당당히 군림하고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서어나무는 극상림을 구성하는 중요한 나무이다. 음수림인 서어나무가 자생하는 지역은 산림이 최소 200년 이상 숲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략 100 ~ 1,000m 고지에서 잘 자란다. 경복궁이나 동구릉 등에 있는 서어나무는 아마도 실력 좋은 조경업자의 안목이었을 것이다.



자작나무과인 서어나무는 수령이 많아지면 나무줄기에 세로로 근육처럼 울룩불룩해진다. 그래서 근육 나무(muscle tree)라고도 불린다. 수피는 매끈해 보이나 거칠다. 봄철에 수액을 뽑아 먹는다.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가 이 나무에 서식한다.



불행하게도 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다. 나이테가 고르지 않아 판재나 목재로 만들기 어렵다. 표고버섯을 심기도 하는데 잘 자라지 않아 참나무에 밀린다. 그래서 결국 최하위 용도인 땔나무로 쓰인다고 한다. 편마암의 물이 안 빠지는 지질 환경에 음지 쪽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보인다. 물 빠짐이 좋은 화강암 지역은 상대적으로 가물어서 물을 좋아하는 나무에 불리하다.


신갈나무 잎(좌)과 상수리나무 잎(침이 있다)


자료에 따르면 불곡산에는 넓은잎나무 중 참나무 6종이 다 있다고는 하는데 낙엽이 심하게 지고 도토리도 다 없어져 구별이 쉽지 않았다. 신발 깔창으로 쓸 만큼 잎이 넓적한 신갈나무와 가장 흔하고 잎에 침이 있는 상수리나무 정도가 눈에 띈다. 그 많은 도토리는 누가 먹었을까 궁금해하다가 눈앞을 튀어 후다닥 달아나는 승용차만 한 멧돼지를 보고는 아무 생각 없이 줄행랑쳐 하산했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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