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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Sep 09. 2022

뉴스 앵커들은 명절증후군이 없습니다.

명절에도 일하기 때문에

한 때 유행하던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월요병을 없애려면 일요일에 출근하세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 그래서 내가 월요병이 없구나!"

(저는 보통 주말 중 일요일에 근무하거든요.)


비단 월요병만인가요. 

앵커들은 '명절증후군'도 없습니다. 

뉴스는 24시간 생방송으로 진행됩니다. 

공휴일에도, 명절에도 뉴스는 쉬지 않죠.

그렇게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뉴스를 만드는 앵커도, 피디도, 카메라 감독도, 기술국 감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직종은 '명절증후군'이란 게 없을 수밖에 없겠죠? 

추석 연휴 첫날인 오늘도 뉴스를 전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출근했습니다. 

(그래도 명절은 즐겁습니다...^^)


몸은 고되지만, 대한민국의 '일상'을 지킨다는 사명으로 일합니다. 

스튜디오와 잠시 멀어졌던 육아휴직 중에 깨닫게 되었어요. 

막연하고 흐릿하기만 했던 사명감이 컬러가 입혀진 듯 선명해졌달까요.


'내가 진행하던 그 뉴스 스튜디오 맞나?'

심지어는, '나도 뉴스를 진행했던 앵커였었나?'

낯선 이질감이 신기했습니다. 

매일같이 뉴스를 '전하던' 일상에서, 막상 뉴스를 '지켜보는' 일상으로 변하니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뉴스'는 모든 이들의 일상에 녹아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TV를 켜시고요. 

점심시간 식당들에서도 TV는 뉴스채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녁에 퇴근하시는 분들은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밤잠을 못 이루시는 분들도 '멍 때리며 뉴스라도...' 

새벽잠이 없으신 어르신들도, 혼자 적적함을 느끼시는 분들도 '사람 목소리라도 듣자'

각가지 이유로 TV를 켜고 뉴스를 보십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하기 위해, 저희는 오늘도, 휴일에도, 명절에도 뉴스를 만들어 갑니다. 


이런 사명감에 돌덩이를 훅- 던지는 유일한 사람은 5세 딸아이입니다. 

"엄마가 빨간 날에도 쉬었으면 좋겠어." 

아이의 소원이라고 합니다. 

아이는 토요일, 일요일을 파란 날, 빨간 날로 부릅니다. 

아직은 엄마의 사명감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나이입니다.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이 주말에 엄마,아빠랑 무엇무엇 했다, 자랑하나 봐요. 

이제는 아이도 제법 컸습니다. 

'부러움' 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으니까요.

자기도 친구들처럼 엄마,아빠 쉬는 날에는 캠핑도 가고(캠핑이라는 용어를 알다니!), 놀이공원도 가고, 여행도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새벽 근무가 끝나면 지칩니다. 

퇴근 후 한숨 자고 일어나면 금세 오후가 되고, 이 시간엔 멀리 나가봐야 스타필드 정도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최고로 행복한 장소가 어디냐고 물으면 "스타필드"라고 답합니다. 

스타필드가 재밌어서라기 보다는, 엄마,아빠와 외출해서 함께하는 '시간'이 값지기 때문이겠죠. 

장소 그 자체보다 '시간'에 의미를 두는 아이. 벌써 다 컸다, 싶습니다.

이런 아이를 생각하면, 이렇게 주말, 휴일 다 반납해가며 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엄마는 뉴스 앵커니까 출근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려고 노력해주는 딸이 기특하고 짠합니다.  


저희처럼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쉴 때 일하는 분들이 참 많죠.

동병상련의 감정 때문인가요.

식당에 가도, 카페에 가도 휴일에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애잔할 수가 없습니다. 

주말이 더 바쁜 놀이공원 종사자들, 하루도 쉬지 않는 버스와 지하철, 회사원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묵묵히 물밑에서 일하시는 청소노동자들도 마찬가지지요. 

모두가 소중한 우리의 일상을 위해 묵묵히 휴일을 반납하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지고 있음에 새삼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처럼 '명절증후군'이 없는 분들을 위해 많은 응원 보내주시면 어떨까요?

경제며, 사회며 고되고 어려운 현실이지만, 한가위만큼은 풍성하고 넉넉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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