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인상적이었나 봐요. 라켓을 꽉 쥐고 뭐라도 때려 부술 것처럼 이리저리 힘껏 휘두르는 제게, 강사님은 아서라, 이러다 사람 친다. 라켓 그렇게 흔드는 거 아니다, 엄하지만 부드럽게 제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원하는 만큼 쳐보라며 공을 튕겨주시더라고요. 어깨가 빠지도록 휘둘렀습니다.
텅-
텅-
제가 다행히 운동신경은 좋습니다. 테니스는 처음이지만 공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이영애 ver.) 라켓에 걸리는 대로 무조건 공을 때렸습니다. 좋더라고요. 야구 배트는 헛스윙하기 일쑤였는데, 그래서 화를 더 돋웠는데, 역시 테니스 라켓은 면적이 넓으니 빗맞아도 일단 펑- 소리는 났습니다.
배드민턴을 할까, 테니스로 할까 살짝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때려야 맛이지! 빈 공간을 채우는 '펑' 소리가 듣고 싶어 테니스로 골랐는데, 음 역시 제 선택이 옳았어요. 라켓 좀 잡아봤냐는 입에 발린 칭찬도 함께 받았습니다. 그제야 들끓던 용암이 수그러듭니다.
훗날 들은 얘기로는, 정말 제 눈빛이 사고 칠 것 같았답니다. 원래 첫날은 자세 연습만 하는데, 특별히 공을 치게 해 주셨다고 해요. "뭐가 그리 스트레스였냐" 물으셨는데, 막상 왜 그랬지? 생각해 보면 머릿속은 또다시 백지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말 스트레스에, 저는 왜 그렇게 가벼이 끓어올랐을까요.
4개월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저는 테린이지만, 이제는 제법 힘조절도 하고, 공을 굴려서 쳐보기도 합니다.
공 하나에 스트레스와,
공 하나에 걱정과,
공 하나에 한숨을 실어 날려 보냅니다.
다 치고 보니 보라색 연못에 노오란 개구리알을 낳은 것만 같습니다. 이 노오란 알들이 하나하나 다 저의 스트레스였습니다.
일주일 뒤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자잘한 실수들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소심한 마음과, 99%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과 상상으로 뇌주름살을 깊게 만드는 쓸데없는 정성과,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사는 어리석음이 곳곳에 던져졌네요.
이내 겸손한 마음으로 공받이를 들고 하나하나 쓸어 담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처럼 아름답기 위해, 제가 낳아 놓은 스트레스들을 주섬주섬 챙겨 깔끔한 코트로 돌려놓습니다. 스트레스를 버리고 '리프레시'를 얻었습니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샌드백이든 베개든 무엇이든 때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애먼 대문, 애꿎은 타이어를 발로 찰 뻔했습니다. 테린이가 테린이에게 권해봅니다. 테니스, 참 좋네요.
제 화를 받아줄 코트는 생각보다 넓었고요, 그 안에서 화를 풀어내는 제 모습도 꽤 건강했습니다. 무엇보다, 코트는 말이 없어서 좋더라고요. 감정이 어떤데? 왜 그런데? 무슨 일인데? 묻지 않고, 그저 묵묵히 한숨이 담긴 공을 받아주어서, 그래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