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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Aug 23. 2022

"엄마, 나도 담배 피워도 돼요?"

그건 안돼. 절대 안 돼.

미술 학원가는 길에 아이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엄마, 어른들은 왜 담배를 피워요?"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을 볼 때마다

아이는 인상을 찌푸린 뒤, 고사리 손으로 마스크를 감싸 안으며,

"아이, 담배 냄새"

제법 싫은 티를 냅니다.

(여태 엄마가 그래서 보고 배웠나 봅니다)

어른들은 재빨리 허리춤 뒤로 담배를 숨깁니다.   

그런 배려가 감사하죠.

그래도 담배 냄새가 불쾌하고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엄마 마음입니다.


담배존을 잰걸음으로 지나며 엄마는 머리를 굴립니다.

질문이 너무 어려운데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아이는 끈질기게 엄마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엄마가 분명 몸에 해롭고 나쁜 것이라고 했는데, 어른들은 왜 담배를 피우지?

어른들도 엄마한테 분명 혼날 텐데?'

조그만 두뇌가 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겁니다.


엄마가 생각한 대답은요.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말이야. 한숨 쉬고 싶어서 그래."


"한숨 쉬고 싶으면 쉬면 되지, 왜 담배를 피워요?"



"..."


"한숨 쉬고 싶으면 그냥 쉬면 되잖아요. 은유도 화가 날 것 같을 때 엄마랑 크게 심호흡하잖아요."


아이는 아직 어려서 감정을 스스로 추스르는 게 쉽지 않습니다. 만 번쯤은 연습해야 어느 정도 가능할까요? 지금까지 한 1000번은 연습한 것 같습니다. ㅎㅎㅎ 엄마인 저도 1000번쯤 속이 뒤집어졌고요. 어르고 달래도, 저도 엄마가 처음인지라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화가 날 것 같을 때, 짜증 날 것 같을 때는 엄마 손을 잡고 크게 심호흡을 3번 하자고 말했어요. 3번으로 짜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5번, 그다음엔 10번... 엄마가 없을 때는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쓰읍... 후... 쓰읍... 후.... <씁. 씁. 후. 후.>를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걸 떠올리며, 한숨 쉬고 싶으면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건강에도 좋지 않은 담배를 피우냐는 논리였습니다. 5세의 논리에 말문이 막히더군요.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런데 어른들은 남들에게 한숨 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


"왜요?"


"왜냐면, 은유도 친구들에게 늘 예뻐 보이고 싶잖아? (네) 어른들도 그래. 같이 일하는 다른 동료들한테 늘 멋있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해. 그런데 한숨을 자주 쉬면 자신감이 없어 보이거든. 감정 컨트롤을 잘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잖아. 그래서 어른들은 마음이 너무너무 힘들 때 한숨 쉬려고 담배를 피우기도 한대."


"그럼 엄마는 왜 안 피워요?"


"엄마는 남들 앞에서 한숨 쉬어도 자존심 상하지 않거든!!!"


"그럼 저도 담배 피워도 돼요?"


화들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게 머선 소리야!!!!!!!!!!


"그건 안돼. 절대 안 돼. 저어어어어얼대 안돼."


"왜요? 은유도 유치원에서 잘 못하면 창피하고 부끄러워요."


"은유가 어른이 되면 피울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아가잖아. 아가들은 담배 못 피워. 큰일 나. 구급차 타고 병원 가서 수술할지도 몰라.(요즘 먹히는 멘트입니다)"


아이는 완벽주의자 성향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무엇하나 비뚤어진 것을 참지 못합니다. 밥 먹다가 흘려도 '힝', 글씨 배우다가 칸을 벗어나도 '힝'. 본인이 실수했다고. 어떡하냐고 오열할 때도 있습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스스로에게 너무 너그러워도 문제지만,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매번 말합니다. 주지 시킵니다. 엄마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엄마도 다 잘하고 싶은데, 엄마도 늘 실수투성이라고  솔직히 얘기합니다. 엄마는 못 하는 게 많은 사람이지만 그게 부끄럽지 않다.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지도  않다. 아이에게 말하면서 저 스스로에게도 주지시킵니다. 저는 실수 많은 제 모습이 인간적이어서 좋다고 생각해요. 완벽하면 세상 사는 게 재미없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실수해도 괜찮아. 다음에도 실수할 수 있어. 하지만 언젠가는 은유가 원하는 만큼 훌륭하게 해낼 수 있어. 


끄덕끄덕.


아이의 반응을 끌어내고 나서야 맘이 놓입니다. 


"엄마는 40살. 너는 5살. (히익. 엄마 나이가 그렇게나 많아요?)

그런데 은유야.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떤 부분은 엄마가 더 잘하고 어떤 부분은 은유가 더 잘해.

그러니까 엄마가 잘 못하는 거 있으면 은유가 알려줘."


도심 한가운데 살지만,

빌딩 사이사이 좁은 길은 거칠기도 합니다.  

그곳은 매일같이 전투를 치르는 어른들의 거친 한숨터가 되기 쉬운 곳 같아요.

동시에 아이들에게는 지독한 담배 냄새가 밴, 화약고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흡연을 저렇게 설명해주는 것도 옳은 일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혹, 좋은 아이디어 있으세요? 궁금합니다.


흡연을 두둔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싫어합니다.

(남편도 단번에 끊게 만든 녀자)

하지만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조금은 더 넓어지길 바랍니다.  

지독한 냄새 속에, 어른들의 고뇌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이는 언제쯤 이해할까요?



2022.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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