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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Aug 24. 2022

앵커가 출근하면 매일 하는 일

이거 나만 모르뉘?

저는 평일 아침 8시에 YTN <뉴스라이더>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당연한 말이지만, 다 생방송입니다.

매일 새벽 4시.

아침 8시 생방송을 준비하기 위해  제가 회사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입니다.


1) 전날 퇴근(낮 12시) 이후부터 새벽 4시까지 작성된 기사를 쭉 본다.

2)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타사 기사들, 많이 본 관심기사들을 훑는다.

3) 조간신문을 펼쳐 모니터상에서 캐치하지 못한 키워드들도 훑는다.

4) 예상되는 속보들, 하루 사이 새롭게 나온 뉴스들을 정리해 커닝 페이퍼를 만든다.

5) 커닝 페이퍼는 문신처럼 챙겨 스튜디오로 가지고 들어간다.

(기회가 된다면, 커닝 페이퍼 존재에 대해 썰을 풀겠습니다.)


'내가 놓친 뉴스가 있을까? 이거 나만 모르나?'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순간입니다.

저뿐만이 아니고요, 출근해서 기사를 훑어보는 앵커들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습니다.

옆에서 농담하면 한 대 칠지도 몰라요. (농담이에요)

(feat. 이렇게 공부했으면 하버드 갔다)


하루 종일 뉴스를 보고 또 봐도 제가 놓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몇 번 아차! 싶은 순간들이 있으면 그다음 날은 더 예민해집니다.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하루 종일 웬 뉴스들이 그렇게 쏟아지는지요.

이 시간에라도 머리에 채워 넣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뉴스를 읽고 소화하고 저장할 시간이 너무나 빠듯해요.


새벽 4시 30분. 회의를 시작합니다.

오늘 인터뷰할 출연 내용을 정리하고, <앵커브리핑>에서는 어떤 아이템을 다룰지 선정합니다.

그밖에 예상되는 속보들, 예정된 일정들을 확인합니다. 이게 한 30분 걸려요.


새벽 5시 즈음부터는 화장실도 못 가는 시간입니다.

앵커리포트를 쓰면서 기사를 자르고, 요리조리 붙이고, 자막을 달고, 그래픽을 구성해 맡겨야 합니다.

이걸 다 앵커가 한다고?

타 방송사 친구들이 놀랍니다.

네. 그 어려운 걸 저희는 합니다.

한 명, 한 명이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투덜댈 여유도, 시간도 없어요.ㅋㅋㅋ(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기사를 쓰면서도 늘 최우선 고민은 '무릎을 탁! 치는' 촌철살인은 무엇일까, 입니다.

그렇고 그런 식상한 멘트 말고요.

쉬운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남녀노소 모두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표현을 찾는 게 저의 가장 큰 과제랍니다.

아마 이 시간에 열화상 카메라로 제 모습을 찍으면 머리에서 빨간 불이 분출될 것이 자명합니다.    


기사를 다 쓰면 대략 6시 30분.

그래픽을 후다닥 맡기고 의상실로 향합니다.

오늘의 의상으로 환복 후 핏을 정돈한 뒤에 곧장 분장실로 향합니다.

변신을 넘어 변장의 시간이죠.

선생님이 발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푸석푸석한 피부를 재빨리 가려줍니다.  

수년간 호흡을 맞춰왔기에 수다도 떨고, 앵커리포트 다음에 이어질 인터뷰 원고도 보면서 이완의 시간을 잠시 가집니다.


메이크업이 끝나면 오프닝 멘트를 쓰고,

구두를 갈아 신고,

또각또각 스튜디오로 향합니다.

(때로는 우당탕탕)


전쟁터 같죠?

솔직한 심정으로,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냐? 싶을 때도 있습니다.

노후 수명을 가불 해서 쓰는 느낌이랄까요.

천천히 스트레칭도 하고 잠도 깨면서 커피도 한 잔 하고 여유롭게 기사를 보고 싶은데, 현실은 반대입니다.


이리 힘든 걸 왜 해?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저도 그게 참... 알면서도 잘 안 되는 일들이 있잖아요?

이를 테면,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 같은 거요.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되는.


'ON-AIR'가 가지는 힘은 정말 마약 같다고 생각합니다.

스튜디오에 빨간 불이 켜지는 순간, 없던 호랑이 기운도 솟아나요.

1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는데, ON-AIR가 켜지면 <뉴스라이더> 두 앵커 모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스튜디오를 에너지로 꽉 채웁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라고들 하잖아요?

늘 긴장되는 생방송이어서 그런가, 늘 가슴이 뜁니다. ㅎㅎㅎ


<뉴스라이더>팀은 시차 근무자들입니다.

일찍(... 이라기엔 너무나 새벽인) 출근하는 만큼 퇴근도 12시 즈음입니다.

그리고 잠시 쉬다가 오후 3시부터 깨톡 회의가 시작되죠.

다음날 인터뷰는 어떤 주제로 할지, 그 주제에 맞는 출연자는 누가 있을지 상의하고, 섭외해야 합니다.

사실 전날 인터뷰이 섭외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때로는 무례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그 흐름에 맞추어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퇴근 후에는 육아에 집중하느라 깨톡 회의에도 소홀한 게 팀원들에게 늘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무한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앵커가 출근하면 매일 하는 일>로 시작해, 반성으로 마무리하네요.

앵커의 하루는 오늘도 이렇게 저뭅니다.

...... 잠시 후 눈 뜨면 또 출근이네요. 헙.


※덧. 피디의 새벽도 만만치 않다고 하는데... 제가 피디 일을 해보지 않아서 앵커 일을 기준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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