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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Feb 29. 2024

앵커엄마가 책 속 단어로 노는 법

닷새와 우레

#. 전래동화가 좋은 이유


7세. 고전 동화를 읽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이제는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가르쳐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나이가 됐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벌을 받고,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며, 남을 괴롭히면 천벌을 받는다는 교훈을 책이 대신해 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저도 이맘때 전래동화를 듣고 읽으며 줄줄 외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이도 부쩍 전래동화를 손에 집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있는 책들은 너무 많이 봐서 모르는 단어가 없더라는 7세의 허세도 한몫을 합니다.


#. "닷새가 며칠이야?"


허세가 귀여워 봐줄까 했지만, 엄마의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흥부와 놀부>를 보는데 '닷새'가 나오더라고요?

<흥부와 놀부> 중

"닷새가 며칠이야?"

엄마의 기습 질문에 아이의 동공이 흔들립니다.


"다...섯 달?"

줄기가 뻗고 잎이 나는 시간. 아이의 지식 선에서는 눈치껏 여러 달은 지나야 한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옳거니. 어휘력 확장의 시간이 왔습니다. 일단 숫자를 세어보게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하나부터 열까지 '닷새'와 어감이 비슷한 단어 하나를 고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는 힌트를 줬습니다. 아이는 금세 정답을 말합니다.


"다섯! 5일?"

정답입니다. 이 참에 하나부터 열까지를 뜻하는 순우리말을 알려줍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


새로운 지식에 신이 난 아이는 사흘과 나흘을 헷갈려했지만, 엄마와 퀴즈놀이를 하며 어휘력을 확장했답니다. '사흘과 나흘' 퀴즈는 잠자리까지 이어질 정도로 아이의 두뇌를 자극했습니다. 사흘과 나흘은 한때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젊은 층이 헷갈려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꼽히기도 했죠. 어른들 중에도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이 참에 다시 한번 짚고 가면 좋을듯합니다.


어른들도 헷갈려하는 단어라고 말해줬더니, 자기는 7살인데 벌써 아는 거냐며 어깨에 힘을 팍 줍니다. 허세력이 +10 상승되었습니다. 사흘과 나흘의 늪을 건너 닷새와 여드레까지 두루 섭렵한 아이는 자신감을 얻고 책을 읽어내려갑니다. 또 다른 복병이 등장하네요.


<흥부와 놀부> 중


#. "우레 같은 소리"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요, 그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모르더라도 앞뒤 문맥을 통해 유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어의 뜻만 달달 외워서는 제대로 된 활용을 할 수가 없지요. 우레 같은 소리의 짝꿍으로 '호령'이 등장했습니다. 아이에게는 '우레'도, '호령'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네 죄가 얼마나 큰지 알겠느냐!"라는 한 마디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죄가 크다는데, 세상이 꽃잎으로 나풀거리는 보드라운 봄날 같은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무언가 무서운 소리라는 건 어감으로도 충분히 압니다.


"우레는 우르릉 쾅쾅! 천둥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야. 비가 거세게 오고 천둥이 크게 치면 무섭지? 그만큼 큰소리로 혼냈다는 거야."

"아아~ 엄마가 나 혼낼 때 내는 소리를 우레라고 하는구나?"


앗. 아프다. 아이의 대답 속에 뼈가 있습니다. 이렇게 엄마를 때리네...

엄마를 아프게 한 대가로 아이의 상상력과 어휘력을 자극하기로 했습니다.


"우레라는 단어를 써서 문장을 만들어 볼까?"


"뿌웅뿌웅, 우르르 쾅쾅! 네가 방귀를 뀔 때 내는 소리, 우레와 같은 소리!"

엄마의 선창에 아이도 질세라 여러 개의 예시를 뚝딱 만들어 내네요. 승부욕마저 있는 기특한 아이입니다.


"어서 빨리 숙제해!!!! 엄마가 내는 우레 같은 소리!"

"으아아아아악~ 유치원에서 친구 00이가 내는 소리! 이게 우레야."

"얘들아!! 똑바로 해!! 선생님이 내는 소리! 우레!"


우리는 또 한 동안 누가 누가 우레를 더 많이 쓰나, 문장 만들기 대결을 벌였습니다. 수다 대결을 벌이다 보면 책 한 권을 읽는 게 한세월이지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독서의 묘미를 느끼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꼼꼼히, 다양한 방법으로 읽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독서에 흥미를 가진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추후에 책으로 게임하는 저희 가족만의 놀이도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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