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감정조절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그게 마음이겠니..."
이런 말을 자주 해왔다. 버거운 감정에 힘들어하는 나 자신에게도, 이성을 따라주지 않는 감정에 답답해하는 친구에게도 위로의 뜻을 담아 했던 말이다. 마음이란 게, 원래 그렇게 마음대로 안 되는 거란다.. 하면서 감정 앞에 '어쩔 수 없는'상태로 놓인 상황이 당연한 것임을, 원래 인간이란 감정에 지배되기도 하고 필연적으로 미숙할 때가 있는 것임을 이야기하며 자책에서 벗어나곤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하면서도 알고는 있다.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이에 능하다면 그 인생은 필히 더 순탄하고 맑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때문에 책의 제목 '예술적 감정조절'을 보고 바로 구미가 당겼다. 다친 마음을 살피고 따스한 말로 달래는 파스텔톤 표지의 책은 이미 차고 넘치게 봤고, 대부분의 경우 베스트셀러라는 홍보에 속아 읽었지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다들 힘들게 사는구나,, 하는 약간의 공감과 위안에 그칠 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는 못 미쳤다.
좀 더 실질적으로 감정조절을 알려주는 방법론적인 책을 원하던 참이었고, 그냥 감정 조절이 아닌 "예술적"감정조절이라니 예술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였다. 또 마침 저자 임성빈은 미대에 재학 중인 친구의 담당교수였는데,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미술 공부에 전념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며 현재까지 활발히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저자 소개를 보자 더 믿음이 갔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터득하고 이뤄낸 통찰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론 편-감정조절법의 이해와 활용
화가 나잖아,라고 말하는 경우엔 '화'가 주체다. 인과관계에 있어 원인론적인 사고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태도다. 나쁘게 보면, 화를 낸 책임을 지지 않고 변명하는 태도다. 반면 화를 내야겠네!라고 표현하는 경우 주체는 '나'. 감정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태토다. 이러나저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언제나 감정이 존재한다. 기계의 마음과 달리 항상 감정이 존재하기에 때때로 보듬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보듬기'가 중요하다. 감정에 의해 당면하게 되는 문제에서 말썽인 부분은 감정 자체가 아니라 이에 대한 부실한 조절 기능이기 때문이다. 특정 감정의 불씨를 이해하고 활용해야지, 거기에 마음이 쏠려 허우적 되면 나만 손해인 경우가 많다.
책의 이론 편에선 감정을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과정이 쉽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여러 번 눈에 익히고 복기해야 하는 표가 열개 정도 있고, 표를 채우거나 읽는 방법도 한 번에 익힐 순 없다. 저자도 명상과 훈련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수치로써, 다양한 방향으로 정리하는 저자의 방식은 새롭고 참신하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어떤 모양과 방향을 가지는지, 음기 양기가 어느 정도인지, 크기는 또 어떠한지 따져보는 일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실제 편-예술작품에 드러난 감정 이야기
실제 편에선 실제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기운을 해석하고, 이를 진단한다. 실제 편의 구조는 크게 네 단계로 나뉜다. 첫 째로 미술 작품을 두 개를 나란히 감상하고, 그 둘 작품에 대해 개략적으로, 서로를 기준 삼아 상대적으로 설명한다. 둘째로 각각의 미술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이 느낄 법한 감정을 연상한다. 셋째, 그렇게 연상한 감정을 이론 편에서 익힌 감정조절 표에 의거해 분석하고 ESMD기법 약식으로 기술하고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이를 감정조절법에 의거해 분석하고 감정조절법 기술법으로 기술하고 해석한다.
전체적인 틀은 이렇다. 매 챕터에서 두 개의 작품을 보고 네 단계의 거친 일련의 과정을 저자와 함께 따라가면서 감정상태를 조망하는 법을 익힌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는 방식이라 해도 쉬운 과정은 아니다. 두꺼운 이론 편을 꼼꼼히 읽고 익히지 않았다면 중간중간 버벅거릴 수밖에 없고 다시 앞으로 넘어가 이론 편의 해당 부분을 읽고 넘어와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작품을 보고 이에 대한 전기적 해석, 형식적, 도상학적 해석 등으로 접근하는 게 아닌 특정인의 감정을 다방면으로 톺아보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게 참신하고 획기적인 만큼 낯설 수밖에 없는 것이니라.
이 인물은 슬퍼 보여요, 기뻐 보여요, 화난 것 같아요, 심심한 것 같아요 등의 일차원적인 감정 기술에서 훨씬 더 나아가 느낌이 부드럽거나 딱딱한지, 사방이 둥글거나 각진 정도, 심도가 깊거나 얕은지 등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향으로 감정을 살피고 따져보는 경험을 거친다. 저자는 이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면서 독자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명확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기를 유도한다.
버거운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한 사람을 아마 성숙한 사람이라고 칭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방법을 예술적으로 알려준다는 이 두꺼운 책을 읽어나가며, 역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시간과 경험, 훈련이 쌓여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그 사람의 행동과 표정에 나타난 감정을 읽고 분석해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에서 그렇게 다양한 감정상태를 지닌 사람들을 접하는 게 흔한 일도 아닐 뿐더러 크게 화가 난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의 감정이 어떠한지 다방면으로 분석해보는 건 좀 이상한 일이니까 말이다.
대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그만큼 익숙한 예술작품을 통해 예술적으로 감정 조절하는 법을 알려주는 게 이 책이다. 감정조절법, 감정조절 표는 생소하고 낯설 순 있으나 친숙한 예술작품 속 인물들과 함께하면 느리긴 하더라도 착실히 나아갈 수 있디. 이론 편에서 머리가 좀 아프고 복잡하더라도 시간을 들여 익히고 실제 편으로 나아간다면, 감정을 키워드로 전개되는 작품 해설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본인의 감정을 전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조절할 준비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예술적 감정조절
버거운 감정을 손쉽게 이해하고 조절하는 비법
지은이
임상빈
가격
24,000원
쪽수
512쪽
발행일
2020년 7월 30일
분야
예술일반
출판사
박영사
ISBN
979-11-303-1056-5(03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