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by 나루터


반딧불이 보일 때는, 어두울 때이다.


스리랑카는 어떠한 곳일까. 인도 대륙의 눈물이라고도 일컫는 스리랑카는 조그마한 섬 나라이다. 인도와 비슷하게 보이긴 하지만 문화는 조금 다르다. 스리랑카의 주요 종교는 불교다. 힌두교 중심의 인도와는 사뭇 다른 종교적 유산이다. 물론 힌두교와 불교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힌두교의 주요 삼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9번째 환생을 불교의 붓다로 인정한다. 붓다 전에는 크리슈나, 라마 (혹 람) 등 그리고 붓다 다음에는 미래에 나타날 한 명의 지정된 환생예정자가 이미 지명되어 있다. 그의 이름은 다름아닌 칼키 (Kalki). 혼돈의 세상에 칼을 든 채로 백마를 타고 나타난다고 한다. 칼키는 힌두교에서 혼돈의 시대라 불리는 칼리유가의 종말을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불교버전으로는 미륵이다. 석가모니 붓다 다음으로 오게 될 붓다이다. 물론, 칼키와 미륵은 비슷해 보이는 듯 다른 것 같다.


스리랑카 한 위빠사나 명상센터에서 명상을 하였다. 총 21일 동안 명상에 집중하였다. 그 당시로는, 가장 오랫동안 명상을 한 기록이었다. 우기 시즌이었다. 불교에는 우기 시즌 (즉, vassa)에 명상에 집중하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스님이 몰리는 시기에 나도 함께 명상 수행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운이 좋았다. 같이 수행하는 스님들로부터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에 내가 명상 인스트럭터가 되는 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을 눈치채셨는지, 거기에 계시던 스님들이 종종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셨다. 한번은 홀로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뒤에 누군가 조용히 그리고 사뿐히 앉아 명상에 동참을 하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몸에 특이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스님의 출현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무엇인가 내 몸으로 쑤욱 하고 들어온 기분이었다. 특이하게도 나쁘거나 이상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이다. 순간 집중이 잘 되고 에너지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저녁 시간대에는 차를 마셨다. 불교 승려의 계 중 하나가 오후불식이다. 저녁에 먹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대신에 간단하게 차를 마신다. 한 스님이 내가 보는 앞에서 차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는것이 인상 깊었다. 차가 든 컵을 우선 보고, 천천히 컵의 손잡이를 손으로 움켜 잡고, 코에 컵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으셨다. 그리고 다시 컵을 입에다 대고 마셨다. 눈으로 보고, 따뜻한 컵을 접촉하여 느끼고, 코로 냄새 맡고, 그리고 맛을 느낀다. 또한, 그 마시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차를 마시는 행위에 수반되는 오감을 모두 알아차림 할 수 있었다. 보면서 배우는 학습 방식이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그곳에서 식사를 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많은 수의 재가자들이 나와서 하나하나씩 밥과 음식을 스님과 수행자들에게 덜어주었다. 가끔은 생필품등을 받기도 하였다. 그럴 때, 왠지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들을 거절하기가 조금 미안하였다. 그래서 나는 무턱대고 조금씩 하나하나 음식을 받아 보았다. 그렇게 받다 보니 처리하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이 쌓이게 된 것이다. 나는 또 그것을 거의 남김없이 먹곤 하였다. 스님들이 식사를 다 마쳤을 때면, 나는 또 허겁지겁 먹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맞은 편에 한 스님이 식사 후 남은 음식을 갖고 와서 거기에 거주하던 동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느꼈다. 아, 내가 남겨도 그것은 다른 생물들의 식량으로 사용이 되겠구나. 미련하게 음식을 다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신 것이었다.

지금생각해보면 너무 고마운 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어느날 밤, 전기가 나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당시, 스리랑카 외환고를 시달리고 있을 때라, 전기 공급이 잘 되지 않았다. 밤에 전기가 나가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걷기 명상을 하는 도중 전기 불빛이 나갈 때면, 반딧불의 이 보이곤 했다. 꼭, 전깃불이 나갈 때 야만 반딧불이 보이곤 했다. 이미 환할 때는, 반딧불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기 때문인듯 하다.


반딧불이 환할 때는, 어두울 때이다.


이미 충분히 환하다면, 그 빛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침내, 그 수행처에서는 각각 수행자들에게 손전등이 주어졌다. 어떠한 수행자는 작은 손전등이 어떠한 수행자에게는 큰 손전등이 주어졌다. 어떠한 빛은 매우 밝아서 매우 넓은 곳 까지 그 빛을 밝혀 준다. 어떠한 빛은 너무 희미해서 주변만 가까스로 비추어 줄 뿐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빛으로 인해서 밝혀 나아갈수만 있다면.

keyword
이전 20화속세의 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