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고아 아람볼 해변 (Arambol beach) 주변은 영적인 워크숍이 많이 열리기로 유명한 장소이다. 특히, 성수기 때 다양한 워크숍이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어렵사리 이 주변에 도착했건만 생각보다 휑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영적인 활동들로 성황을 이루는 곳이 아니었다. 아뿔싸! 지금은 9 월이다. 이곳의 성수기는 12 월에서 3 월 사이라고 들었다.
아무리 영적인 장소라고 해도, 손님이 없으면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 상도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가 티베트인 (혹은 네팔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운영하는 크리슈나 라마 베이커리 (Krishna lama bakery)에 죽을 치고 앉아 있었다. 그곳에는 몇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고 있었다. 그 중 한 가무잡잡한 인도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곳의 터줏대감 같아 보였다. 잭 (Jack) 이라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방문자들에게 요가를 가르치고 있었다고 소개를 하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는 약 1 년에서 2 년 정도 말을 하지 않는 묵언 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 리조트에서 서양인들에게 주로 요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최근 위빠사나 명상 프로그램에 참석하였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명상 가이드를 해주었다. 그 또한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한 이력이 있었다. 매우 세부적인 안내 (instruction)가 인상 깊었다. 또한 처음 접해보는 신선한 방식이기도 했다. 코에 집중을 하고, 코에서 들어가는 공기의 차가움과 뜨거움 (보통 숨을 들이쉬면 차갑고 내쉬면 따듯한 느낌이 든다), 코 안에 있는 콧물 (액체), 등을 알아차림 하도록 안내하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알아차림의 과정에 사원소가 모두 포함이 되어 있었다. 코딱지는 지, 콧물은 물, 뜨거움은 화, 공기는 풍이다.
요가에 관심을 보이니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들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나는 그가 공부했던 비하르 스쿨 (Bihar School), 하타요가 관련 Kaivalyadhama, 박티요가 관련 마타 암리타난다마이 (Mata Amritanandamayi, Amma Kerala), 삿구루 아쉬람 (Isha), 아트 오브 리빙 (Art of Living)의 라비 샹카라 (Ravi Shankar) 등을 메모지에 적어 놓았다. 특히, 아빈은 암마 (Amma, 엄마라는 뜻)의 동영상을 보고,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구루들이 있다. 암마는 인도에서 여신 (devi)으로 추앙 받는다. 그녀를 ‘포옹하는 성자’라 하기도 한다.
책으로는 하타요가 프라디피카 (Hatha Yoga Pradipika), 하타 라트나발리 (Hatha Ratnavali), 그리고 시바 삼히타 혹 상히타 (Shiva Samhita) 등을 알려 주었다. 사실 이 책들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책들은 주로 지식을 다룬다. 직접적인 경험과 전문가 (혹은 구루)의 안내 없이 책만으로 요가를 이해하는 것은 부족할 것이다. 종종, 위험할 수도 있다.
이 친구는 특정한 규율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조금은 자유로운 요기와도 같아 보였다. 세속적인 삶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영적인 삶을 유지해 나아가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는 술도 마셨다. 그가 해장을 잘 할 수 있도록 차 한잔을 사주었다. 또한,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나도 나름 기여를 한다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종교적 굴레에서, 사람들에게 경건한 인상을 남겨주는 종교적 지도자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친구와 같이 일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돕고 있는 수행자들도 있을 것이다. 겉모습 그리고 각자의 역할이 다르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같아 보인다. 화광동진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친구를 보고 하는 말이지 않나 싶다. 자신의 빛을 감추고 속세 안으로 빠져드는 자리. 어찌 보면, 이 자리가 가장 어려운 자리이지 않을까 싶다. 겸손함, 겸허함, 그리고 깊은 연민이 기본적 바탕이 되지 않으면 힘든 그러한 자리이기 않을까?
이 친구 덕분에 그가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에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동네에서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상업화가 된 영적인 여행지라 그런 것일까? 영적인 장소로 소문난 곳이 오히려 세속적인 경우도 꽤 있다. 영적인 곳에는 대게 자유가 동반이 되곤 한다. 이러한 자유가 세속적인 일탈로 빠져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아 주 자체는 포루투갈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았다. 대략 400 년 정도이다. 무엇보다, 이 곳은 인도 내에서도 술을 마시기에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라는 이미지가 만연하다. 고아는 술에 세금이 붙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부담을 덜고 술을 마시기에 좋은 곳이다. 매우 영적인 장소라고 여겨지는 태국의 코팡안도 세속적임이 공존하는 곳 중 하나이다. 매달 열리는 풀문파티는 코팡안이 어떠한 곳인지 잘 대변해 준다. 흔히들, 풀문 파티를 광란의 파티라 하기도 한다. 물론, 코팡안에는 요가나 명상 등과 같은 심신수련을 위해 장기 거주하는 여행객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지기도 하다.
영적임과 세속적임의 양면성은, 영적인 길로 나아가다, 다른 길로 빠져 나아가기 쉬운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태국에서 만난 예술가 친구가 우리에게 안겨준 실팔찌가 생각이 났다. 왼쪽팔이냐 오른쪽 팔이냐. 영적인 삶이냐. 물질적 삶이냐. 과연 둘 다 선택할 수 있을까?
활활 타오르는 불 꽃 속에서도 연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