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의 마법사들 독후감상문

로맹 가리의 소설

by 신현호

서문

나는 개인적으로 프랑스 소설을 애호하는 편에 속한다. 프랑스 소설의 어떤 점을 좋아하냐면, 역시 당돌함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프랑스 소설의 당돌함이란 있는 그대로의 사회와 현실을 향한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의미한다.


때문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직설적인 알베르 카뮈, 당대 프랑스 사회의 각박한 생활과 퇴폐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에밀 졸라를 높게 평가했다. 로맹 가리가 이런 부류의 작가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내가 읽은 로맹 가리의 첫 소설인 <자기 앞의 생 > 또한 조금이나마 그러한 성격을 타고 났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자기 앞의 생>을 처음 읽었을 때, 로맹 가리라는 작가가 인생의 외로움, 사랑의 부재, 곤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점에서는 프랑스다운 사회, 인식적 비판 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작가라고도 느꼈지만, 인생의 아픈 부분을 직시하는 점에서 스스로는 로맹 가리가 어느 정도는 프랑스다운 작가라고 여겨왔다.


로맹 가리의 생애와 소설의 특징

로맹 가리는 러시아계 유대인 출신으로, 소년기에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해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공군에 복무하며 영국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조종사로 복무하면서도 소설을 꾸준히 집필한 로맹 가리는 <유럽의 교육>을 발표하여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전후에는 외교관으로 일하며 꾸준히 집필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프랑스 비평가들은 로맹 가리의 작품 활동에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이에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를 비롯한 여러 필명을 앞세워 각종 소설들을 발표했고, 그의 필명 중 하나인 에밀 아자르는 비평가들의 찬사 속에서 <자기 앞의 생>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로맹 가리 사후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동일인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원칙적으로 한 명이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공쿠르상 역사에 다시 없을 2회 수상자가 졸지에 탄생하고 말았다.


<마법사들>은 여러모로 로맹 가리의 유년기, 러시아 시절을 모티브로 그린 듯한 소설이다. 유년 시절으로 돌아간 로맹 가리의 이야기답게, 주인공 또한 어린 포스코 자가의 성장과 그가 몸담은 마술사 일족의 쇠락사를 그렸다.


<자기 앞의 생>에서는 주인공 모모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사랑이 얼마나 필요하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마법사들>은 포스코의 회고로 시작한다. 어른이 된 포스코의 회고록 작성에 앞선 논지는 자신의 유년기가 환상으로 아픈 현실을 극복해내는 데 익숙해지는 과정이었음을 밝힌다.

환상과 현실의 대립은 <마법사들>의 테마가 되는 주제 의식이다. 정색하는 차가운 현실에 맞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환상이 만든 거짓말로 스스로를 보호해야한다는 포스코의 말처럼, 앞으로 펼쳐질 수난에 앞서 마술사 일족은 자신들의 장기인 환상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자기 자신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로맹 가리의 소설 2권을 읽으면서, 로맹 가리 본인의 작품을 이루는 사상이 다소 염세적인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은 두 소설 모두 미숙하고 어린 주인공이 등장하며,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삶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도인 사랑의 실패나 좌절을 겪고,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한 없이 가혹한 현실을 드러낸다는 점이 그러하다.

지금까지 읽어온 로맹 가리의 소설 속 인물들은 성숙하지 않았다.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각자 약점이 존재하며 한 없이 나약한 구석이 존재한다. 이는 상당히 현실적인 설정인데, 현실의 어른들 또한 인격적 결점이나 현실이 요구하는 능력의 부재로 각종 갈등에 시달리는 모습을 고려하면 더욱 현실적이다.

<마법사들>은 본질적으로 포스코 자가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행복의 원천인 환상을 잃어가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파악한 로맹 가리 소설들의 핵심 주제는 '사랑만이 현실을 구원한다.'인데, 만약 현실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번 이야기는 직접 묻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은 역시 소설의 주제인 '환상'이다.


환상의 여러 모습

기가차차드.jpg
성냥팔이 소녀.jpg
환상의 두 가지 모습

이 뜬금없는 사진 두 개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왼쪽은 최근 유머 커뮤니티에 긍정적인 반응을 불어넣은 <내면의 기가차드> 밈이다. 선량한 동반자 기가차드는 비록 실존하지 않지만, 방구석 커뮤니티 유저에게 일갈과 조언, 용기를 북돋아주면서 유저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호천사 같은 존재이다.

오른쪽 사진은 모두가 아는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로, 성냥팔이 소녀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성냥을 밝히며 행복을 그리다가 추위 속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이 두 관련 없는 사진을 이어놓은 까닭은, 환상이 만들어낸 두 존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기 위해서이다.

방구석 커뮤니티 유저이든, 성냥팔이 소녀이든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 둘 다 누구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지만, 환상의 도움을 받으면서 긍정을 상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현실 어디에도 구체적인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희망이 존재한다는 믿음만이 희망을 현실에 구현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환상이 현실을 즉시 고쳐주지는 않는다. 환상이 추위마저 막아주었더라면, 성냥팔이 소녀는 추위 속에서 얼어죽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환상은 유치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절망을 차단하고, 자존감의 훼손을 막아주지만, 차가운 현실을 즉시 구제해줄 수는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환상은 희망을 주는 성격 때문에 의도치 않게 사람들을 골탕먹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망 없고 따분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믿고 복권을 구매하고, 일발역전의 환상에 매혹돼 위험한 사업과 도박, 투기에 투신한다.


나치스.jpg 학살의 새 시대를 연 히틀러와 나치당. 1차 대전의 패배 원인을 배후의 유대인으로 지목해 독일인들의 패배 의식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환상의 순기능이 더욱 나쁘게 이용된다면, 최악의 경우 나치 독일의 슬로건처럼, 자신들의 실패를 회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어 학살과 탄압, 독재로까지 퍼져나갈 수 있다.

이렇게, 환상은 행복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전혀 예상하거나 통제하지 못한다. <마법사들> 속 이야기 또한 환상을 엮어내 희망을 전달하는 마술사 가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주인공과 아버지 주세페 또한 환상의 여파로부터 안전하지 못했다.


줄거리 (스포일러 있음!)

소설의 줄거리는 환상을 다루는 마술사 집안의 흥망성쇠를 그렸다. 줄거리는 크게 포스코의 유년 시기와 아버지가 데려온 4살 터울의 새엄마 '테레지나'의 등장, 자가 가문의 가정 불화와 고난, 가문의 쇠락으로 구분된다. 이야기는 먼 미래에 환상을 그리는 가업을 이어 원숙한 작가가 된 포스코의 회고록으로 시작한다.

라브르보 숲에서 상상으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포스코는 아버지가 고국 베네치아에서 데려온 새 신부 테레지나에게 반해 첫 사랑을 누린다. 아이에서 소년이 된 포스코는 테레지나와의 사랑으로 행복한 시기를 보내지만, 천천히 아버지 주세페를 향한 새엄마의 경멸, 돈에 의해 결혼한 테레지나의 충족되지 않은 사랑이 불러온 분노가 수면 위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포스코 또한 아이의 세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환상과 새로 배운 사랑이 주는 행복보다도 훨신 복잡하고 방대하며, 차가운 현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테레지나가 가져온 난동이 궁정의 마술사이자 치료사인 주세페의 비난거리로 발화하여 주세페 일가는 근신처분을 받고 천천히 가문이 쇠락하기 시작한다. 가문의 쇠락은 푸가초프의 민란이라는 시대와 맞물려 겉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몰락한다.


감상문(스포일러 있음!)

<마법사들>은 아버지 포스코 자가의 고난과 화자 포스코의 성장에서 마주한 현실과 환상의 대립을 그린 소설이다. 현실의 녹록지 않음을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영원할 것 같았던 포스코의 근원 라브르보 숲과 오흐레니코프 궁을 상실하는 유소년기를 성장을 끝맺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환상을 다루는 마법사 일가인 자가 일족은 환상을 철저히 희망의 존재를 확신시켜 주는데에만 이용하는 '환상의 프로'임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환상에 조예가 깊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가 일족의 대척점인 대주교를 비롯한 아버지의 정적들과 푸가초프의 반란군은 희망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불리고 적들을 탄압하는 데 희망을 앞세우거나, 자가 일족을 수탈하는 데 이용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역시 아버지 주세페의 짝사랑이었다. 테레지나가 본래 귀족을 경멸하는 출신이라고 하지만, 돈으로 자신을 산 아버지를 경멸하며 결혼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혀왔다. 주세페는 이러한 아내의 정색과 냉소 앞에서 기력을 천천히 잃어갔고, 가망 없는 사랑 속에서 분노하고 좌절하면서도 사랑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장기인 환상으로 희망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그나마 포스코를 향해서는 테레지나가 나름대로의 관용을 보여 애욕에 가까운 형제애를 앞세워 양아들의 영원한 첫사랑으로 남기를 갈망한다. 테레지나는 내심 작가의 자질을 보이는 포스코가 자신을 원형으로 온갖 사랑 이야기를 남겨 주길 기대했다.


이야기의 절정인 테레지나의 죽음에 이르면, 주세페가 사랑하는 테레지나를 살리기 위해 온갖 사기꾼들에게 기만당하기를 선택하는 장면과, 이제는 다 커버린 포스코가 건강을 잃은 첫사랑과 마주해 어떠한 환상도 발견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마음 아프다.

테레지나의 죽음과 함께, 포스코는 그녀를 원형으로 자신의 영원한 사랑을 만들어 글 속에서 불멸의 테레지나에게 사랑을 받으며 베네치아에 도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는 포스코의 환상을 엮어내는 기술이 경지에 이르러 불멸의 환영을 그려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서글프지만, 환상이 그리는 불멸의 아름다움이 무척이나 인상 깊은 소설이었다. 현실이 차가울 수록, 환상 또한 따뜻해지는 셈이었다.

한편으로는 소설가라는 직업은 환상을 그려내는 마술사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해야 한다는 로맹 가리의 창작 이념을 엿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설가가 그려내는 환상은 어느 정도는 좌절된 꿈에서 기인한다는 감상도 조금 든다. 당장 나부터도 이룰 수 없는 꿈을 이야기 속에서 그리려는 습관을 가진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또한 어른이 된다는 것, 환상을 상실해 차가운 현실을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이 인간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라고도 느껴진다. 작중에서 어른들은 우는 방법을 망각했다는 듯한 표현들도 그렇고, 여러모로 성장의 씁쓸한 뒷맛을 정갈한 미문으로 그려냈다.


다만 서술 방식이 미래에서 유년기를 회고하는 식이라서 포스코가 글을 쓰는 20세기와 유년기인 18세기의 이야기가 뒤섞여, 다소 작중 정보가 현재와 얽히는 점은 이야기를 읽는데 다소 혼란스러웠다. 또한 이야기의 어투가 직관적이지 않고 은유적인 편이라서 적응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한편으로는 소설의 감동적인 주제에 비해서 너무 환상의 성격에 대해서 혼자 지나치게 몰두했다는 생각도 들어 아쉽다. 다음에 다시 읽는다면 텍스트에 조금 더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재미삼아 나만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줄거리 : 3.0 / 5.0 - 다소 고전적인 줄거리이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스타일 : 3.2 / 5.0 - 완곡적이고 재기발랄한 서술과 대비되는 냉혹한 현실의 암시가 대비되어 매력적이었다.

메세지 : 4.0 / 5.0 - 현실의 고통을 완화하는 환상이라는 이야기의 주제가 마음에 들었다. 환상의 가치를 잘 드러내는 메세지였다.

취향반영점수 총점 : 3.5 - 메세지에 조금 더 집중했더라면 더 즐겁게 읽었을 작품이었다는 점이 아쉽다.


한편으로는 <마법사들>을 동화적인 이야기라고 하기엔 참혹하고 다소 엉큼한(?) 구석이 있어서 작품의 완성도와 다르게 누군가에게 추천할지 살짝 곤란한 소설이었다. 그래도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할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마 다음에는 로맹 가리의 대표 작품인 하늘의 뿌리나 유럽의 교육을 읽어보고자 하는데, '인간성'을 주제로 삼은 하늘의 뿌리가 조금 더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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