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 독후감상문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by 신현호

서문

오르한 파묵은 내가 튀르키예라는 나라에 관심을 품으면서 함께 알게 된 작가였다. 처음 오르한 파묵을 입문한 책이 분량이 짧은 편인 <하얀 성>이었는데, 튀르키예라는 인문환경에 대한 관심에 비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은 아니었다.

때문에 현역병 시절, 자기개발비용으로 <내 이름은 빨강>을 사서 읽을 때도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파묵의 미학 경력과 추리 요소, 세련된 현대 소설 기법의 집약체인 <내 이름은 빨강>에 감탄했다.


파묵의 소설에 재미를 붙인 나는 대학교 복학생 시절에 <빨강 머리 여인>과 <페스트의 밤>을 읽었고, 작년에는 <내 마음의 낯섦>을 읽었다.

독서 경력이 쌓일 수록 파묵은 개발도상국의 거장을 사랑하는 나에게 좋은 전력이 되어, '믿고 읽는 작가'로 취급 받았다. 이렇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함께, 오르한 파묵은 내가 좋아하는 얼마 없는 현대 작가 중 하나로 내게 남았다.


역시 25년에도 한 번쯤은 파묵의 소설이 읽고 싶었기 때문에, 현대 튀르키예 사회-정치의 어두운 면을 그린 <눈>을 읽을 지, 집착적인 사랑 이야기인 <순수 박물관>을 읽을 지 고민하다 심리적인 고뇌를 그린 작품이 좋을 것 같아서 <순수 박물관>을 읽기로 결정했다.


오르한 파묵의 생애와 작품의 스타일

작가 오르한 파묵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 학창 시절 내내 건축가, 화가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그러나 파묵은 23살의 나이에 학업을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 7년에 동안 이전부터 취미였던 집필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오르한 파묵은 첫 소설 <제브데트와 아들들>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에 뛰어든 파묵은 뛰어난 장편 소설들을 연달아 발표하며, 98년도에는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을 발표했다. 이렇게 꾸준히 작가 생활을 이어온 파묵은 2006년에 튀르키예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후로도 꾸준히 장편 소설, 에세이를 발표하며 꾸준히 작가 생활을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오르한 파묵 소설의 핵심은 역시 로맨스에 있다. 파묵의 거의 모든 이야기는 줄거리 안에 연인의 사랑을 그려 놓았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주인공 카라와 과부 셰큐레 사이의 사랑을, <내 마음의 낯섦>은 가난하지만 정직한 노점 주인 메블루트와 라이하의 사랑을 그렸다. 이 외에도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 <하얀 성>을 제외하면, 파묵의 소설의 가장 큰 틀은 언제나 로맨스를 벗어나지 않았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들을 두 가지로 나누자면, 튀르키예의 역사와 민족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스타일과 동화적인 사랑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역사와 새 것을 상징하는 서구화와 전통적인 아시아가 충돌한다는 주된 테마가 되는 소설들은 <내 이름은 빨강>, 현대 튀르키예 안의 좌우대립을 그린 <눈>, 서구와 아시아의 미묘한 차이와 융합을 암시하는 <하얀 성>이 있다. 반면 자전적이거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은 <내 마음의 낯섦>, <빨강 머리 여인>, <순수 박물관>이 음모로 가득 찬 세상 속 순수한 사랑을 그린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순수 박물관>은 사랑을 본격적인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거장이 사랑을 주제로 장편소설을 썼다는 점에서는 이전에 리뷰했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나쁜 소녀의 짓궂음>, 혹은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떠오르는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이야기와 다르게 이야기 속 연인인 퓌순과 케말의 사랑 이야기는 다른 소설들 처럼 행복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줄거리

cultural-tourism-5264542_1920.jpg 타지 마할은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사랑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왜 튀르키예 소설 이야기인데 갑자기 인도의 타지 마할의 사진을 올렸는지 묻는다면, 이 소설의 이야기가 주인공 케말이 애인 퓌순과 사랑을 이루는 대신 자기만의 타지 마할을 지어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케말 에크템은 재벌가의 자재로, 30살까지 미국에서 유학한 이후 고국 튀르키예로 돌아와 아버지의 사업을 일부 물려 받았다. 탄탄대로를 걸어나갈 케말은 여자친구에게 명품 가방을 사 주려고 부티크를 들렀다가 점원으로 일하는 먼 사촌 퓌순에게 반하면서 예상치 못한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운명적으로 서로에게 반한 재벌 케말과 가난한 재수생 퓌순의 사랑은 점점 커져만 가지만, 케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류 계층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약혼하고 만다. 케말과의 사랑으로 대학 입시까지 망치고 당시 사회에서 생명과도 같았던 혼전 순결마저 포기한 퓌순은 케말의 배신을 잊기 위해 잠적한다. 평생의 사랑을 순간적인 나약함 때문에 잃어버린 케말은 퓌순을 쫓아 이스탄불을 뒤지면서 후회와 좌절로 병들어간다.

결국, 약혼자와 파혼한 케말은 1년만에 퓌순의 편지를 받아 결혼한 그녀의 초대를 받고, 그 때부터 케말은 타인의 아내가 된 퓌순을 소유하는 대신 갖은 이유로 퓌순 곁을 맴돌면서 그녀의 손길이 닿은 잡동사니를 모으는 것으로 실연의 상처를 틀어막고자 한다. 케말의 콜렉션은 커지고 커져서 결국 박물관을 이룬다는 것이 하나의 줄거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감상문

젊은 독신의 재벌과 가난한 소녀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순수 박물관>은 다소 정석적인 현대 멜로 드라마를 떠올리기 좋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진부한 소재를 거장이 직접 다루었기 때문에, 작품 안에 베어든 고독과 집념, 폭발적인 스토리텔링과 섬세하고 정밀한 상황 묘사가 일품인 작품이었다.


오르한 파묵의 자전적인 요소가 섞인 소설답게, 상류 사회의 삶과 좌절당한 사랑의 경험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진심으로 퓌순을 사랑하면서도 과감하게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는 대신 여태껏 배워온 예절 때문에 능글맞게 거짓말을 치면서 애인 곁을 맴돌 수밖에 없는 케말의 행보는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케말 또한 나름의 사정과 진정한 사랑을 나눌 능력이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읽을 수록 나도 모르게 8년 동안이나 사랑하는 애인을 맴도는 부자 케말의 사랑이 이뤄지길 간절히 응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케말은 자신의 사랑 퓌순 때문에 상류 사회에서의 명예와 평판, 부, 건강, 보장된 미래를 포기했다. 케말은 공적인 사업을 사심 때문에 그르치는 소심한 인물이었고, 그렇게 모든 것을 망쳐가면서까지 퓌순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대신 이미 결혼한 퓌순의 복수 앞에서 무력하게 곁에 머무르며 사랑을 갈망하는 연약한 인물상이라고 생각한다.

중반부에서 케말은 퓌순의 남편인 드라마 제작자 페리둔과 영화 산업에 투자하기 위해 논의한다는 이유로 그의 집을 꾸준히 들러 애인 곁에 앉아있는 것으로 삶을 8년이나 이어나간다. 이젠 그가 이룰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 곁에서 머무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화자 케말의 집착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바로 추쿠르주마의 퓌순의 집의 정경을 향한 묘사였다. 퓌순과 함께 하는 순간을 케말은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초반부 그의 독신자 숙소인 멜하메트 아파트에서 퓌순과 사랑을 나누던 순간 들려온 소리, 날씨, 감촉, 심상, 분위기의 묘사가 대단히 섬세해 독자들은 정말 케말이 집착 때문에 아무 것도 잊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인상을 피할 수가 없다.

퓌순의 세계를 묘사하는 모든 순간마다 회자 케말의 병적인 관찰력이 드러난다. 케말은 퓌순과 그녀의 세게를 이루는 모든 물건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사랑할 뿐더러, 그녀가 피운 담배, 퓌순 일가의 안락한 가정생활을 행복하게 추억한다. 일상적이기 그지 없는 물건들과 순간들이 사랑 때문에 하나의 예술이자 역사로 변모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성인의 성물처럼 다뤄지는 퓌순의 흔적들을 바라보면서, 사랑이라는 것이 신앙심과 삶의 원동력을 만드는 것일까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는 퓌순 입장에서 고려해보면 이기적인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남자의 씁쓸한 고백을 듣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이야기 내내 퓌순은 사촌 케말 때문에 신세를 망쳐왔다. 사랑으로 대입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다시 등장해서는 배우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악용해 끝 없이 곁에 앉아있을 시간만 늘려왔다. 케말은 상술했듯이 성격이 나약하다는 이유로 내내 거짓말로 사랑을 표현해왔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였다고 본다. 조금 더 일찍 케말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용기가 있었다면, 상황이 이 정도로 망가졌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떠나질 않는다.


케말의 집착이 가져온 섬세한 관찰의 묘사가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런 점에서 서사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원한다면 다소 재미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톨스토이의 소설들처럼 하나의 시대를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드러나서 읽기 편하거나 쉽게 넘기기엔 너무 세상의 방대함이 무거운 작품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파묵이 만든 70~80년대 튀르키예의 사회는 대단히 실감났고, 그 안에서 실패한 동화와도 같은 사랑을 이어가는 케말의 인생이 결합됐다는 점은 독창적이었다.


보통 파묵의 사랑 이야기는 동화적인 요소가 존재하는데, 이번 이야기는 실연이 주제이기 때문에 다소 동화랑은 거리가 먼 슬픈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렇게 끝나지는 않았다.

퓌순과의 사랑이 실패로 끝나고, 평생을 그녀와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케말은 그녀를 기리는 박물관을 건설하기 위해 전 세계의 박물관을 오가면서 새로운 인생에 뛰어든다. 그는 실패한 사업가였지만, 중년에 이른 자신의 정력을 쥐어짜내 퓌순과의 사랑을 기록하는 '순수 박물관'을 추쿠르주마에 건축하기 위해 앞장선다. 사람들은 실패한 사랑꾼인 케말을 동정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지만, 케말은 오히려 퓌순과의 사랑 덕분에 행복했다고 술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케말은 실연의 고통과 좌절 없이 삶의 행복을 배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파묵은 치명적인 사랑이 가져오는 불가항력적 인생의 변화와 실패, 한 순간 망가져버릴 수도 있는 운명의 무력함을 잘 드러내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다만, 작품의 말미에 이르면 화자의 순간적인 교체가 나타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는 화자나 주인공의 교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여서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느낌이라서 미묘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순수 박물관의 입장권은 귀엽고 재미있는 아이디어였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면, 케말의 박물관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는데, 이 때 세월의 웅장함과 진정한 사랑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헤세의 <유리알 유희>가 작품 말미에서 하나의 거대한 놀이였음이 드러나는 것처럼, <순수 박물관>은 그 자체로 사랑의 역사를 기록한 위대한 박물관이었던 셈이었다.


여담

사진의 출처 - https://blog.naver.com/yunus-emre/222200721709

파묵 순수 박물관.png <순수 박물관의 > 소품을 손수 수집한 오르한 파묵
핸드백.png
담배들.png
퓌순의 드레스.png
퓌순과 케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핸드백과 이야기가 끝나는 꽃무늬 드레스.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들이다.

이야기를 다 읽고 안 사실이지만, 순수 박물관은 실존하는 장소라고 한다. 이야기는 진짜가 아니지만, 소설에서 등장한 수집품들은 파묵이 손수 수집하여 전시했다. 원래, 나의 20대 동안 이루고 싶었던 꿈이 이스탄불에 여행가는 것이었는데, 순수 박물관의 소식을 들으니 더더욱 이스탄불을 들러보고 싶어졌다.


한편으로는 자기 소설의 장소를 직접 창출한다는 점에서, 파묵의 거장다운 집착과 장인 의식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삼아 나만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줄거리 - 2.8 / 5.0 - 소재의 매력에 비해서 줄거리 자체는 일상적이고 소소했다.

심리묘사 - 3.8 / 5.0 - 일상의 행복을 앗아갈 정도로 열광적인 사랑과 실연의 절망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배경묘사 - 3.8/ 5.0 - 섬세한 묘사만으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잘 드러냈다.

취향반영점수 총점 : 3.3. 뛰어난 소설이었지만, 지금의 내 문학 취향과는 살짝 거리가 느껴졌다.


소설을 읽을면 읽을 수록 느끼는 거지만, 오르한 파묵의 소설은 탄탄한 기본기와 미학의 가치가 드러나는 작가라서 지금보다는 나중에 문학적 소양을 기른 채 만날 수 있었다면 그 진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문학 취향과 심미안이 직관적으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순수 박물관>은 다소 평가를 절하당했다고 생각한다.

소설과의 만남이 조금 일렀다는 점은 아쉽긴 하지만, 지금도 파묵의 작품들은 재미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재미있는 작가로 남아있는 걸 보면, 앞으로도 파묵의 작품을 꾸준히 접하고 싶어진다. 다음에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새로 읽는다면, 근대성에 대해서 상고하는 작품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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