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독후감상문

크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

by 신현호

서문

사탄탱고는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 중 하나였다. 헝가리라는 낯선 인문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21세기 최신예 문학의 성격을 알아보고 싶다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보통 모험이나 새로운 경험은 모를 수록 재미있어지기 때문에, 사탄탱고와 라슬로에 대해서 모르는 채로 소설에 도전했다만... 예상치 못한 음산한 줄거리와 당혹스러운 해석과 마주쳤기 때문에 감상이 뒤숭숭하다.


나름의 매력도 강렬한 작품이긴 한데, 지금껏 추구해온 고전문학 애호가였던 내 문학 취향과 해석하는 수준으로는 역시 이해가지 않는 구석이 많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나의 관점

우선, 정보의 설명에 앞서 나의 정보 조사 능력과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부족한 편이라는 사실을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틀린 정보나 자료 조사의 부족한 면은 댓글로 지적해주길 부탁한다.


일단, <사탄탱고>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를 따르는 작품이다. 내가 비록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근간이 되는 사조는 역시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다.


그러나 틀을 단순히 깨부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틀을 얼마나 계산적으로 부수고 그 잔해를 활용하고 배치해 또 다른 예술을 탄생시키느냐가 이 사조의 관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간 표현의 미학이던 예술은 근본적인 영역인 아이디어와 미학적 설계의 싸움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간의 예술 사조에 비하면 한 단계 진보해 입체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드러낸다. 때문에, 직관적인 리얼리즘, 큰 왜곡이 없는 모더니즘에 비하면 다소 머리를 굴려 해석하거나 유추할 요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방식 때문에, 나는 퍼즐들이 한 조각으로 맞춰질 때 비로소 나타나는 큰 그림으로서의 아름다움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는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19세기의 대세였던 리얼리즘과 20세기의 대세 모더니즘을 넘어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입지를 조금씩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도 평할 수 있다.


리얼리즘 시대의 이야기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만 흐르는 직선적인 구조를 이룬다. 모더니즘 속 이야기는 흐름이 현재, 과거, 미래가 뒤섞일 수 있으며 왜곡될 수 있지만, 형식이라는 구속에서 자유로운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의 근본적인 규칙을 기만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다.


때문에 문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대단히 난해하다는 대중적 평가와 더불어, 구조적인 완성도로 '계산된 혼란'을 추구하여 미학을 또다른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도 볼 수 있다.


나 또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에 익숙한 독자였기 때문에, 사실 사탄탱고의 어디가 충격받을 정도로 아름다운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해석을 찾아보면 인물들의 계급과 사건의 구조가 입체적인 균형을 이룬다고는 하는데, 사실 이건 내가 직접 이해하지 못하면 그닥 재미있는 요소로 다룰 수 없는 점이 아쉽다.


비록 현대문학의 문외한인 나조차도 소설의 세련된 구조는 어렴풋이 느꼈다. 통상적인 구조를 뛰어넘는 챕터의 구성과 이야기에서 뭔가 느낀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독후감 또한 내가 느낀 사탄탱고의 '겉'에 집중하고자 한다. 솔직히, 그 내실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줄거리와 스타일(스포일러 있음!)

이야기는 종 없는 마을에 울리는 종소리로 시작한다. 1980년대 정권의 종말을 앞둔 공산 헝가리, 망해가는 집단 농장에서 정체되어버린 마을 주민들은 각자 이사하여 인생을 재건할 꿈을 노리면서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불륜과 음주, 일탈로 허비한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 한복판에 정력적인 공산당원 이리미아시가 죽었다는 소문을 뚫고 마을로 찾아오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몰락에서 구원할 유일한 해결방안으로 그의 귀환에 매달린다. 주민들이 기대에 부풀어 오른 와중, 소외된 바보 소녀 에슈테케는 오빠에게 속아 모든 것을 잃고, 앞으로는 죽어서 오빠를 돕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살을 기도하고 만다.


소설의 장은 총 13개로, 1~6 장까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6부터는 1을 향해 각 장이 퇴행하기 시작하고, 최후의 장에 이르러서는 원이 닫히며 이야기가 무한히 반복되는 루프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야기는 절망적인 시대에 답이나 희망을 발견하는 대신, 무한히 몰락한다. 이는 소설에 메타픽션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 이야기의 화자 역할은 정직 처분을 받고 은둔한 등장인물인 의사가 수행한다. 은둔한 의사는 집착적인 마을 관찰 끝에 마침내 자신이 이 작은 마을을 지배하는 이치(종소리의 정체를 포함한다.)를 이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원히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 자신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루프 구조가 형성되고, 마을은 영원히 몰락의 1980년대에 남는다.


감상문(스포일러 있음!)

일단, 사탄 탱고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괴기소설 내지는 오컬트 소설처럼 초자연적이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 나는 아예 공포 소설을 접해본 적이 없었어서 이러한 을씨년스러운 배경묘사에 다소 당황했다.


마을의 배경은 모두가 떠나고 희망이 없는 집단 농장의 배경은 가을비가 내리는 음울한 10월이다. 모든 것이 썩어가고 퇴행하는 계절, 끝없이 내리는 비, 좌절적인 현실 앞에서 불륜과 음주로 몰락한 현실을 도피하는 어른들, 빈 마을을 차지해가는 거미줄, 질퍽한 진창, 지저분하고 을씨년스러운 마을의 풍경, 종 없이도 들리는 종소리, 죽은 고양이 등등, 이러한 요소로 작가가 불길하고 암울한 배경 형성에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읽는 내내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러한 좌절적인 배경 묘사 때문에, 나는 처음에 읽으면서 헝가리 공산 사회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소설이거나, 몰락을 앞둔 농민들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이건 너무 번듯한 추측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상술했듯이 이야기는 무언가 교훈을 주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 계통 소설답게, 소설은 교훈을 주는 대신 스스로를 연장시키는 루프 구조를 형성해 기괴한 시대에 독자를 영영 빠뜨릴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훈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반쯤 읽어가면서는 <사탄 탱고>의 스타일과 섬뜩한 배경 묘사,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의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장면 묘사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담으로 이런 식으로 읽었던 소설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이란의 소설가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였었다. 이 작품은 사데크 헤다야트가 극심한 우울증으로 투병한 끝에 남긴 유작이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의 해체를 염두하고 쓴 듯한 스타일과 구조 때문에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읽으면서는 무언가 이해하기 위해 읽는 대신 그저 텍스트가 그리는 현재를 이해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읽기 시작하면서 죽어가는 병자의 슬픔과 상실한 건강, 가장 원하는 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이때처럼 <사탄 탱고>도 작품의 텍스트 자체가 집중하면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서 태도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야기나 메세지적으로 큰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내가 현대 소설의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에 대한 조예가 부족해 <사탄 탱고>의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사탄 탱고가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 없고 무가치한 독서였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애초에 그랬더라면 아예 독후감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야기의 훌룡한 배경 조형뿐 아니라, 정확한 상황 묘사가 없는데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배경과 대사, 부패하는 세기말의 묘사가 제대로 을씨년스러웠기 때문에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절정인 두번째 4장인 '천국의 비전인가, 환각인가' 파트에 등장한 죽은 소녀 에슈테케의 승천은 작품을 지배하는 기묘한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이었다. 안개 속 오빠를 찾아온 소녀의 형상,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창조된 존재임을 깨닫는 '전지전능한' 구원자 이리미아시 등등, 인상적이긴 해도 솔직히 통상적으로 이해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년의 고독>에서 '미녀 레메디오스'가 빨래와 함께 하늘로 날아가 승천하는 장면처럼, 말이 되는 장면은 아닌데도 소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마을을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힘과 광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공포 소설적인 매력을 더욱 증가시켰다는 생각도 든다.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의사가 소멸에 대항하여 글쓰기로 몰락을 무한히 연장하여 이야기가 1장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해석에 따르면 이는 <사탄 탱고>의 테마인 '소멸'을 막는 유일한 저항 방법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그러더라도 유예에 불과하기 때문에 딱히 작가가 그런 희망찬 메세지를 남겼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에서 감동 받았는지 궁금해 이것저것 감상문을 뒤져보았는데, 역시 대부분은 이야기의 루프 구조, 등장인물의 배치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했다. 루프적 구조의 소설 구도는 읽던 나도 느낄 수 있었지만, 순전히 배치의 미학에서 감동을 느끼는 수준의 심미안이 내게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서술 방식의 특징으로, 문장이 무척 길어 이야기가 읽기 다소 불편하고 책의 호흡이 무척 가파르다. 심지어 중간에 등장인물이 꾸는 꿈에서는 아예 띄어쓰기가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 사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복잡한 문장에 무척 약한 편이라서 거의 못 읽었을 책 수준이었는데, 작품을 지배하는 매혹적인 배경과 나름의 서사가 존재해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은 편이었다.


작품의 제목이 '사탄' 탱고인 것처럼, 나는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영영 벗어날 수 없는 소멸의 지옥을 그렸다는 생각도 든다. 깔끔한 텍스트와 뛰어난 배경 조성으로 색다른 방식으로 지옥도를 그리려는 시도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을씨년스러운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부정한 생활 태도, 초자연적인 힘 또한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재미삼아 나만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줄거리 : 2.7/ 5.0 - 크게 중요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스토리가 존재한 덕분에 읽을만 했다.

스타일 : 4.0 / 5.0 - 명불허전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소설답게 스타일이 무척이나 세련됐다.

배경 묘사 : 4.5 / 5.0 - 배경의 을씨년스러운 이미지를 철저하게 구축하고 활용했다. 사실상 작품의 원동력.

취향반영점수 총점 : 3.7 - 까닭은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원래 그동안 나의 평가 잣대가 심리 묘사-서사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평가가 다소 낮게 나왔다.


아마 다시 읽는다면 꽤 먼 미래가 되겠지만, 멋진 구조를 가진 소설임을 이해하기 위해서 언젠가 할로윈 시즌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