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순자의 인식론적 공명

감각은 열고, 마음은 완성한다

by 김희곤

인식은 어디서 시작하는가? 이 물음에 칸트(Kant)는 감성(感性)에서 출발한다고 답한다. 감성의 기능은 직관(直觀)이다. 우리는 감성을 통해 외부 대상을 수용하되, 그 수용은 수동적 각인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험적 형식 안에서 이루어진다. 즉 우리는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조화된 감성의 틀을 거쳐 받아들인다. 그러나 감각 자료만으로는 인식이 완성되지 않는다. 날것의 자료는 아직 개념 없는 혼돈이다.


여기서 오성(悟性)이 개입한다. 오성은 범주(範疇)라는 순수 개념을 통해 감각 자료에 질서를 부여하고, 흩어진 것들을 통일된 대상으로 파악한다. 칸트에게 판단(判斷)은 오성의 핵심적 기능이다. 감성이 문을 열면 오성이 그 안으로 들어가 배치를 결정하는 셈이다. 나아가 이성(理性)은 오성의 판단들을 더 높은 원리로 연결하여 추리(推理)하고, 조건 너머의 무조건적 통일을 지향한다. 요컨대 감성은 직관, 오성은 판단, 이성은 추리를 각각의 본질적 기능으로 삼는다. 이 세 층위는 분리되어 있으나 인식이라는 하나의 운동 안에서 연속된다.


이 구도를 염두에 두고 동양 사상을 돌아볼 때, 칸트와 가장 구조적으로 공명하는 인물은 순자(荀子)다. 순자 역시 인식이 감각기관, 즉 천관(天官)을 통한 외부 자극의 수용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눈은 빛을 받아들이고, 귀는 소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순자는 이 수용만으로는 참된 앎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감각기관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료를 받아들이더라도, 그것을 통합하고 분별하는 주체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주체가 바로 마음[心]이다.


순자의 마음은 천군(天君), 곧 감각기관들을 통솔하는 군주다. 마음은 감각이 가져온 자료를 ’징(徵)’의 과정, 즉 검증하고 확인하는 내적 종합을 통해 진정한 지식으로 완성한다. 감성이 직관하고 오성이 개념화한다는 칸트의 구도와, 천관이 수용하고 심이 종합한다는 순자의 체계는 구조의 결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 두 사유 모두 감각적 수용과 정신적 종합이라는 인식의 이중 구조를 핵심에 놓고 있으며, 어느 하나만으로는 앎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칸트의 오성과 이성은 기능적으로 엄밀히 분화된 별개의 주체다. 오성은 판단하고 이성은 추리하며, 이 분화는 칸트 철학의 비판적 엄격함을 떠받치는 근간이다. 반면 순자의 마음은 인식의 종합, 판단, 실천적 욕구의 통제를 모두 관장하는 통합적 주권자다. 칸트가 기능의 분화를 통해 인식의 한계를 설정했다면, 순자는 마음의 통합성을 통해 올바른 앎의 조건을 탐색했다. 순자는 칸트의 번역어가 아니라, 같은 인간 조건에서 길어 올린 다른 언어다.


그럼에도 두 사유가 만나는 지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물음을 건넨다.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자극의 과잉 속에 살고 있다. 감각은 쉴 새 없이 열려 있으나, 그것을 통합하고 의미로 전환하는 내적 종합의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칸트와 순자는 각각 다른 언어로, 그러나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감각이 열어 놓은 문은 입구일 뿐이며, 그 안에서 무엇을 배치하고 무엇을 판단하는가는 여전히 마음의 몫이라고. 앎의 완성은 수용의 양이 아니라 종합의 깊이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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