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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도이 Oct 30. 2024

공원과 이별

시답잖은 이별도 있을까요 

시답지 않은 이별이란 

이별은 대체로 시다워야 한다는 말일까요 


시다운 이별이란 이별에도 리듬이 필요하다는 말일 수 있겠지만     

이별은 시보다 가방이 필요해요 


애인과 이별할 땐 아주 큰 가방을 들고 나가죠 

새 애인을 담아야 하니까 

무겁겠죠 

전 애인의 로션과 키스와 함께 여행했던 옆좌석의 수많은 시간도 

따라나설 테니까요     


가방이 크다고 이별이 완성되진 않아요 

이별은 주머니가 많아서 자주 마셔줘야 하거든요 

얼마나 많이 마시면 이젠 가죽주머니까지 텅 비었어, 라고 

이별이 말할 수 있을까요    

 

이별이 많은 나는 가방이 많죠  

두 시간 책을 읽고 잠시 책과 이별할 땐 어떤 가방을 데리고 나갈까 뒤적거리죠 

가방이 없어도 되는데 말이죠  

    

가방이 없으면 이별도 없는데

한 달 지난 이별이 오늘 아침까지 가방에 남아 있고 

이별을 아끼는 사람처럼 내일의 공원에서도 이별과 나란히 걷고 있겠죠 

가방끈처럼 흘러내리면서    

 

새처럼 가벼운 이별은 없을까요 

새들이 가방을 물고 날아갈 수 있도록

새들이 날아가는 길은 왜 사라지나요

새가 가방끈으로 물어가나요  

   

뭐 그런 생각을 하며 가방 속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새가 날아간 방향에서 

새로운 이별을 기다리는 나를 꺼내죠

이별은 시보다 가방이 필요하다는 말을 수정할게요  

   

이별은 시보다 새가 필요해요

공원에서 시를 읽는 사람보다 새를 보는 사람이 많은 이유죠 

새는 가벼워서 자주 날아줘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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