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깊은 곳에는 피아노가 있을 것이다
지구의 심장처럼
해머가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심박수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해변의 의자 등받이에 접근금지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바다는 언제나 의자 앞에서 주저앉는다
페달을 길게 밟으며 바다가 해안선을 돌아오는 날 나는 바닷속 피아노를 생각한다
그것은 본디 검은 침묵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두드려야 푸른 노래가 펄떡거리는 심장이어서 바다는 그 손가락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바다를 십 센티쯤 열어놓는다
푹푹 빠질수록 소리가 돋아나는 건반의 땅에서 나는 나의 손가락을 벗어나려는 흰 파도를 잡는 놀이에 빠져 있다
놀이는 놀이일 뿐
희고 검은 날들이 하얗게 몰려온다
나는 빈 의자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애인이라고 믿는 사람과 커피를 즐기고 있다 바다는 애인의 심장이 몇 그램인지 묻지 않는다
바다는 늘 지금이니까 느닷없이 애인과 똑같은 운동화를 신고 싶어 한다
바다가 피아노를 마구 두드리고 있다
지구 끝에서 무역선이 느릿느릿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