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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도이 Oct 30. 2024

레레의 집

레레의 아이는 사백 살이다 쭈그러진 뺨에 매미울음이 번들거린다 마루의 적막 사이를 파리가 기어다니고 있다 아이는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아이는 아이의 집을 찾아갈 수 없다 아이는 없는 집을 잃어버린 채 사백 년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레레의 여자는 길고 검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다 진홍빛 블라우스가 환하게 웃던 날 어여쁜 유방 두 짝을 도려낸 여자는 서른아홉에 죽었다 유방 속에 똬리 틀었던 서른아홉 채의 집도 사라졌다 서른아홉 채의 집과 유방 두 짝에 전세를 놓은 레레의 남자는 레레의 여자를 꿈꾸고 있다 레레의 거미는 옷소매 위로 목덜미로 기어다닌다 거미가 지나간 자리마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소름이 자라서 슬픔을 낳는다 소름과 슬픔의 입술이 완벽하게 마주쳤을 때 레레는 거미가 된다 거미는 평생 집을 지어야 한다 제 뱃속 가득 집을 갖고 있으면서 늘 집을 짓느라 바쁘다 뱃속의 집을 다 뽑아버릴 때까지 집을 지어야 한다 레레는 거미처럼 문 뒤에 숨어서 사거리를 바라본다 무지개를 찾던 그림자들은 제집을 향해 깡충깡충 뛰어가고 어떤 그림자는 주영광 안경집 유리 속으로 사라진다 집이 빤히 보이는 거리에서 레레는 집을 잃고 레레의 그림자는 헤매거나 넘어지거나 죽는다 그것이 취소될 때 비로소 확실해지는 문장들이 있다 가령, 레레에게는 버젓한 집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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