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갠 왕숙천

망우초

by 구현

흐릿한 하늘 아래, 왕숙천 수변공원으로 느릿한 발걸음을 옮겼다. 거칠게 반복된 폭우 탓에 강물은 진한 흙탕물이 되었고, 코끝에는 짙은 물내음이 감돌았다.


강변의 나무와 풀들은 한여름의 짙은 녹음을 머금고 있었다. 무더위와 폭우로 일 없는 날이 이어지며 가뜩이나 마음은 무겁지만, 걷는 이 순간만큼은 시름을 잊는다.


습도는 높았으나 구름 가득 찬 하늘과 강바람 덕분에 후덥지근함은 덜했다. 그때, 굵은 장대비를 꿋꿋이 버텨내고 머리를 꼿꼿이 세운 작은 꽃무리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토끼풀 잎 사이로 앙증맞게 얼굴을 내민 꽃송이들이 산책로 주변에 널려 있었다.


어느 한쪽에 모여 핀 주황색 꽃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어머, 원추리네."


아내는 백합처럼 생긴 꽃 이름을 알았다. 망우초(忘憂草). 근심을 잊게 해 준다는 꽃. 나는 아내를 따라 그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폭우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그 당당한 자태가 경이로웠다.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해가 지면 스러지는 하루살이 꽃이라는 사실이 나의 일용직 생활과 닮아 애틋했다. 오늘 일이 있으면 내일은 없고, 언제 또 일이 들어올지 알 수 없는 그런 생활. 하지만 다음 날 또 다른 봉우리에서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끈질긴 생명력이 가슴에 와닿았다. 나도 저 꽃처럼, 매일 새로이 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문드문 보이던 푸른 하늘이 금세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더니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팡이 삼아 들고 온 큰 우산을 함께 쓰고 수변공원을 빠져나왔다.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사라져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송이 한 송이 새로운 꽃이 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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